「소문록」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남자 주인공 소현의 여러 부인이 애정과 가모권을 차지하기 위해 갈등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특히 처인 윤씨와 첩인 조씨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어 있으며, 주된 내용은 윤씨가 조씨를 덕으로써 개과천선시킨다는 것이다.
14권 14책. 국문 필사본(筆寫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유일본(唯一本)으로 소장되어 있다.
18세기 중반에 창작된 것으로 보이는 「여와전(女媧傳)」에 「소문록」이라는 제명(題名)과 주인공인 소현, 윤씨의 이름, 윤씨의 행적과 관련된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18세기 전반쯤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국문 장편소설(長篇小說)로서는 초기 작품에 해당한다.
송나라 진종(眞宗) 때 승상(丞相) 소연의 셋째 아들 소현은 풍채(風采)가 좋고 문장(文章)이 뛰어났으나, 15세에 부인 호씨를 병으로 잃는다. 그래서 덕행(德行)과 재주가 뛰어난 윤 시랑(侍郞)의 딸과 재혼한다. 소현이 과거에 장원 급제(壯元及第)하자, 황제는 소현을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제수(除授)하고, 장 황후 동생의 딸 옥선군주(장씨)와 결혼시킨다. 소현은 윤씨를 공경(恭敬)하나, 윤씨에게 깊은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소현은 두 부인과 금슬이 좋지 않아 자녀가 없었다. 그러자 황제는 다시 승상 조원의 딸(조씨)과 소현을 결혼시킨다. 소현은 비로소 부인 조씨와 부부의 낙을 누리게 된다.
조씨가 궁녀 유 보모를 데려왔는데, 유 보모는 성질이 간사(奸邪)하고 포악(暴惡)하였다. 조씨 또한 심성(心性)이 고약하여 유 보모가 꾸민 흉계에 가담(加擔)해서, 어질고 마음씨가 고운 윤씨와 장씨 두 부인을 괴롭힌다. 윤씨는 아들을 낳았으나, 아들은 병들어 죽는다. 아들을 잃은 윤씨는 매사(每事)에 뜻이 없어 친정 부모의 신위(神位)를 모시고 별장(別莊)인 안궁으로 떠난다. 소현의 어머니인 정태부인은 아들에게 말하여 안궁으로 양식(糧食)을 보내게 하나, 유씨는 윤씨를 굶겨 죽이고자 쌀 대신 모래를 넣어 보낸다. 윤씨는 시녀와 함께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延命)한다.
한편, 남편 소현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궁중에 와 있던 부인 장씨는 병을 얻어 죽는다. 이때 소현의 친척인 가씨가 남편 채생을 잃고 시누이 채 소저(小姐)(채씨)와 함께 안궁에 와서 살게 되었다. 소현이 우연히 가씨를 찾아왔다가 채씨의 아름다움을 보고, 가씨를 졸라 채씨와 결혼한다. 이에 조씨는 채씨를 시기(猜忌)하였다. 소현은 조씨에 대한 사랑이 식자, 안궁에 있는 윤씨를 생각하게 된다. 윤씨는 본가로 돌아가자는 소현의 청을 거절하나 시아버지의 친서(親書)를 받고 본가로 돌아온다. 유 보모가 다시 윤씨를 해칠 생각을 하고, 윤씨는 안궁에서 앓았던 병이 도져 다시 안궁으로 돌아간다.
황제가 다시 소현에게 참정(參政) 양의의 누이와 결혼하라고 하니, 소현은 부인 양씨를 사랑한다. 여러 부인을 겪어 본 소현은 안궁의 윤씨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이에 안궁으로 가 병들어 누워 있는 윤씨를 지성(至誠)으로 간호하며, 윤씨에게 잘못을 빌고 윤씨를 집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유 보모를 친구 아버지의 후처(後妻)로 보낸다. 이후 윤씨는 아들 차흥과 환흥을 낳고, 채씨와 양씨 두 부인과 화목하게 지내며 조씨를 교화(敎化)시키려 애쓴다. 이때 장 황후(皇后)가 죽어 조씨는 애통(哀痛)함을 금치 못하였는데, 윤씨의 정성 어린 위로에 감동한다.
그러나 혼자가 된 유 보모가 다시 나타나 윤씨를 죽이고자 윤씨의 인형을 만들어 땅에 묻는다. 윤씨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의 힘으로 위기를 벗어난다. 유 보모는 다시 조씨와 친밀한 단성공주를 찾아가 황제를 움직여 윤씨를 축출(逐出)시킨다. 윤씨는 옆집에 사는 소현의 심복(心腹)인 설홍의 집에 숨어 지낸다. 소현은 조씨를 찾지 않고 윤씨를 그리워하다가 병을 얻는다. 설홍에게서 윤씨의 거처를 들은 소현은 밤중에 담을 넘어 윤씨를 만난다.
이때 남만(南蠻)이 강성(強盛)하여 중원(中原)을 침공하니, 소현은 평남대원수가 되어 첫째 아들 소차흥을 데리고 출전한다. 소차흥은 큰 전공(戰功)을 세운다. 이어서 둘째 아들 소환흥이 유 황후가 낳은 옥성공주의 남편으로 간택(揀擇)되니, 황제는 윤씨의 죄를 용서하여 윤씨를 본가로 돌아가게 한다. 윤씨는 남편이 나머지 세 부인(채씨 · 양씨 · 조씨)을 박대(薄待)하는 것을 보고,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하여 안궁으로 가서 숨는다. 이에 소현이 찾아와 모든 부인들을 똑같이 대우하겠다고 약속하니, 윤씨는 그제야 돌아와 세 부인과 함께 화목하게 살아간다.
사실 소현 · 윤씨 · 조씨는 전생에 인연이 있었다. 전생에 소현은 정원, 윤씨는 정원의 처 조계랑, 조씨는 정원의 첩 초선이었다. 그런데 조계랑이 초선을 질투하여 심하게 때려서 독살(毒殺)하였다. 독살당하여 저승에 간 초선도 지장보살(地藏菩薩)에게 원통함(冤痛)을 호소하고 원귀(冤鬼)가 되어 조계랑을 죽게 하였다. 결국 세 사람은 전생의 응보(應報)에 의해 현생에 다시 관계를 맺고 갈등을 빚게 된 것이었다.
「소문록」은 새로운 형태의 쟁총형 가정소설(家庭小說)이다. 일반적인 쟁총소설은 한 남성을 둘러싸고 여러 여성 사이에서 전개되는 시기 · 질투 등 가정의 비극(悲劇)을 그리면서, 일부다처(一夫多妻)의 부부 생활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통해 권선징악(勸善懲惡)이나 개과천선(改過遷善) 같은 도덕 및 윤리 문제를 주제로 다룬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러한 구성을 탈피(脫皮)하여 질투하는 여인의 음모를 사전에 피함으로써, 다른 작품에서 나오는 것처럼 남편으로부터 축출을 당하여 온갖 고난과 사경(死境)을 겪는 비극을 예방하는 점이 특이하다. 또 첩인 조씨가 능동적으로 음모를 꾸미는 것이 아니라, 조씨의 유모인 유 보모가 직접 음모를 꾸며 부인 윤씨를 괴롭히는 점도 다른 쟁총소설과 다르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편애(偏愛)하는 남편이 자기를 비롯한 세 부인을 똑같이 사랑하게 하여 가정의 평화를 도모하고, 자기를 모해(謀害)한 조씨를 온갖 노력과 정성으로 감화시키는 윤씨의 성녀(聖女)와 같은 덕행(德行)을 표출한다. 더불어 윤씨는 작품 내부에서 가장 부덕(婦德) 있는 인물로 서술되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비교적 직접적 · 노골적(露骨的)으로 드러낸다. 곧 윤씨는 당시의 사회적 여건과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할 방도를 찾고 주체적(主體的)으로 자신의 안정적(安定的) 지위와 욕망을 달성하는 현실적(現實的) 인물이다.
「소문록」은 불교적 응보관에 기반한 변형된 윤회(輪廻) 보응(報應)의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응보의 실현 과정이나 그 이후에 보이는 작품의 전개는 부부간의 애정과 가문 내부의 권세(權勢) 다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한 작품 속에서 저승과 현세의 삶이 전생의 삶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저승에서 어떤 행위를 하는가에 따라 현세의 운명이 바뀐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현실에 대응하는 삶의 방식 및 능동성(能動性)이 강조된다. 이런 점에서 「소문록」은 응보 그 자체보다는 응보의 해원(解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 작품은 17세기 국문 장편소설인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에서부터 보인 세정소설(世情小說)의 특성이 나타난다. 세정소설은 보통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생활 공간과 그 안에서 발생하는 일상 및 갈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정세태(人情世態)를 기술한다. 그렇기에 「소문록」은 인간의 현실적 욕망 및 당대 사람들의 내면을 매우 정성스럽게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