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서지사항
구성과 내용
임무을 맡은 두 성군이 황능묘에 이르러 보니, 현부열녀들이 곤룡포를 입고 옥띠를 두르고 있었다. 두 성군이 여자의 몸으로 성제와 명왕의 이름을 칭하니, 이는 대적이라 꾸짖고 여와씨의 분노를 전하였다.
최패염 · 정숙렬 · 사정목 · 조경아 · 소월영 등 스스로 황제라고 칭한 여자들의 덕행은 칭송하고 악행을 나무라며 옛 소임으로 돌아가기를 권하자, 모두 복색을 바꾸고 옥띠를 벗었다. 여자들 가운데 양판화와 윤가녀는 부처의 제자가 되었음을 책하여 머리를 깎아 내쫓고, 양태진 · 조비진의 무리는 옥에 가두어 요얼을 평정하였다.
옥황상제가 모든 선경을 조회받을 때 여와씨가 문창의 공적을 고하여 문창은 벼슬을 하사받았다. 이 자리에 참석한 관음이 문창에게 과거에 불도를 배척한 것을 따져 물었다. 문창은 불도를 심하게 비판하고 괴이한 도로 천하를 더럽힌다고 비난하였다.
관음 자신도 일국 왕후로서 왕이 불도에 나간 뒤 나랏일을 돌보지 않고 같이 출가한 일을 들어 나무랐다. 그러나 크게 불가를 침노한 적은 없으니 상관하지 말라 하니, 관음이 크게 부끄러워하며 허물을 깨우쳤노라 하였다.
문창이 삼강오륜이 불도의 근본임을 알라고 냉정히 충고하자 관음 곁의 행자가 대노하여 쇠막대로 문창을 내리쳤다. 문창이 오히려 행자의 머리에 붓을 박음으로써 제어하였는데, 관음도 그 붓을 제거하지 못하였다. 붓을 거둬들인 문창이 동화궁으로 돌아간 뒤, 요얼을 평정하고 불교를 물리친 것을 축하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관음이 석가여래를 찾아가 법력으로 문창을 제압할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석가여래는 유교를 뒤따라 불교가 만들어졌고, 문창은 태고성인으로 도덕이 양교에 통하므로 불가에는 제어할 도리가 없으니, 다툴 뜻을 두지 말라고 하며 오히려 관음에게 유교 우위를 인정하였다.
의의와 평가
사건의 전개로 보아 문창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목은 ‘여와전’으로 되어 있다. 이는 전반부와 내용이 같은 「여와씨성회연록」이 있다는 점에서, 불교에 대한 강한 반발을 가진 필사자가 부연하여 창작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불가가 항복하니 기특하다고 한 결미도 이런 가능성을 더욱 짙게 한다. 또 ‘녀와뎐문챵셩탕평요얼’과 같은 긴 제목을 간략하게 언급하던 것이 정착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여와전」은 다양한 소설 유형의 존재와 소설에 대한 독서 체험을 바탕으로 한 독자층의 비평 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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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찬원, 「도교권선서(道敎勸善書) 『음즐문(陰騭文)』에 나타난 윤리사상 연구」(『도교문화연구』 37, 한국도교문화학회, 2012)
- 전기화, 「『여와전』 연구 : 여성 ‘비평주체’를 중심으로」(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6)
- 전성운, 「〈여와전〉과 〈봉신연의〉 대비의 소설사적 의미」(『한국민족문화』 24,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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