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비장전」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여자를 멀리하겠다고 맹세한 배 비장이 제주의 아름다운 기생 애랑에게 홀려 제주목사를 비롯한 관리들에게 망신을 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주목사와 애랑·방자가 공모하여 배 비장을 속임으로써 풍자하고 희화화하는 작품이다.
1권 1책. 국문본.
판소리로 불려진 「배비장(裵裨將)타령(배비장)」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판소리 열두 마당에 속하지만, 고종 때 신재효(申在孝)가 판소리 사설(辭說)을 여섯 마당으로 정착시킬 때 빠진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배비장타령」은 이미 판소리로서의 생명을 잃어 가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신재효가 창작한 것으로 보이는 「오섬가(烏蟾歌)」에 「배비장전」의 한 부분인 애랑과 정 비장의 이별 장면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으며, 배 비장이 애랑에게 조롱을 당하는 사실이 서술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이 시기까지 「배비장타령」은 부분적으로 불리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배비장전」의 중요한 이본(異本)은 2가지가 있다. 하나는 1916년에 신구서림(新舊書林)에서 간행된 구활자본(舊活字本)이고, 다른 하나는 1950년에 필사본(筆寫本) 75장을 저본으로 삼아 교주를 단 김삼불 주석본이다. 구활자본에서는 배 비장이 애랑과 방자의 꾀에 빠져 온갖 곤욕을 치른 뒤에 정의현감(旌義縣監)이라는 관직에 오르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김삼불 주석본에서는 배 비장이 애랑과 방자의 꾀에 빠져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알몸인 채로 궤에서 나오는 장면으로 끝나고 있다.
「배비장전」의 소재가 되었을 것으로 지적된 근원설화(根源說話)로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랑하는 기생과 이별할 때 이빨을 뽑아 주었던 소년의 이야기인 「발치설화(拔齒說話)」이다. 다른 하나는 기생을 멀리하였다가 오히려 어린 기생의 꾀에 빠져 알몸인 채로 뒤주에 갇혔다가, 여러 사람 앞에서 망신을 당하는 경차관(敬差官)의 이야기인 「미궤설화(米櫃說話)」이다.
서거정(徐居正)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에 실려 있는 「발치설화」는 애랑과 정 비장의 이야기에 수용되었다. 한편, 이원명(李源命)의 『동야휘집(東野彙輯)』에 실려 있는 「미궤설화」는 애랑과 배 비장의 이야기에 수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있었던 일이 설화로 바뀌는 양상이라는 관점에서, 「배비장전」의 바탕이 된 「미궤설화」의 근원이 더욱 자세히 밝혀지기도 하였다. 김안로(金安老)의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에 수록된 「모안렴위기광욕(某按廉爲妓狂辱)」, 『실사총담(實事叢譚)』에 실린 「풍류진중일어사(風流陣中一御史)」라는 이야기 등이 「미궤설화」의 근원이 되었으리라고 추정될 수 있다. 관인 사회(官人社會)에 처음 참여하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입사식(入社式)인 신참례(新參禮)도 「배비장전」의 소재로 수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의 형성 시기는 정확하게 알기 어려우나, 1754년(영조 30) 유진한(柳振漢)이 남긴 「만화본춘향가(晩華本春香歌)」에 「배비장타령」의 존재를 암시하는 대목이 있다. 영조 때까지 판소리의 한마당이었던 「배비장타령」이, 판소리로서의 생명을 잃고 그 사설만 기록되면서 소설화된 「배비장전」으로 남아 전해졌을 것이다.
남주인공인 배 비장은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김경을 따라온 평범한 인물이다. 여주인공인 애랑은 제주 기생으로, 여러모로 빼어난 인물이다. 이러한 설정은 배 비장에 대한 애랑의 우위를 예견하게 한다.
작품 첫머리에는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김경 일행이 풍랑을 만나 고생을 겪은 뒤에 제주도에 도착하는 사건이 묘사된다. 이 부분에는 비장들의 자탄사설(自歎辭說)이 끼어 있는데, 이는 「적벽가(赤壁歌)」에 나오는 군사들의 자탄사설과 비교될 수 있다. 이어 애랑과 정 비장의 이별 장면이 벌어진다. 이 장면은 그 자체가 희극적이지만, 동시에 애랑과 배 비장 사이에 벌어질 사건을 준비하는 구실도 하고 있다. 정 비장이 애랑에게 창고에 넣어 둔 자신의 짐을 모두 내어 주고 이별하려 할 때, 애랑은 정 비장의 몸에 지닌 것을 남김없이 얻어 내고는 끝내 그의 이빨까지 빼게 했다.
서울을 떠날 때 어머니와 부인 앞에서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떠났던 배 비장은 이 장면을 보고 정 비장을 비웃다가 애랑을 두고 방자와 내기를 걸게 되었다. 기생과 술자리를 멀리하면서 홀로 깨끗한 체하는 배 비장을 유혹하기 위해서 방자와 애랑은 계교를 꾸몄다. 이러한 계획은 목사가 지시한 일이었다. 목사는 계교의 실행을 돕기 위하여 야외에서 봄놀이 판을 벌인다. 애랑은 목사 일행을 따라 나와 따로 자리 잡은 배 비장을 유혹하려고 수풀 속 시냇가에서 온갖 교태(嬌態)를 부리며 노닌다. 이에 크게 마음이 움직인 배 비장은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뒤처진다. 이 부분에 금옥사설(金玉辭說)이 끼어 있는바, 이것은 앞부분에 끼어 있는 기생점고(妓生點考)와 함께 「춘향전(春香傳)」에 나오는 금옥사설 · 기생점고 부분과 비교될 만하다.
배 비장은 방자를 사이에 넣어 애랑이 차려 주는 음식상을 받아먹고서, 애랑을 잊지 못하여 마음의 병이 든다. 배 비장은 방자를 매수하여 애랑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만날 기약을 얻어 내고, 방자가 지정하는 개가죽옷을 입고 애랑의 집을 찾아간다. 배 비장은 애랑의 집 담 구멍을 간신히 통과하여 애랑을 만나게 되는데, 한밤중에 방자가 애랑의 남편 행세를 하며 들이닥치자 황급히 자루에 들어간다. 방자가 술을 사러 간다고 틈을 내준 사이에 배 비장은 다시 피나무 궤에 들어가서 몸을 숨긴다. 방자는 배 비장이 숨어 들어가 있는 피나무 궤에 불을 질러 버리겠다고 위협하다가, 다시 궤를 톱으로 켜는 시늉을 하면서 궤 속에 든 배 비장의 혼을 나가게 한다. 배 비장이 든 피나무 궤는 목사와 육방(六房)의 아전(衙前)들과 군졸들이 지켜보는 동헌(東軒)으로 운반된다. 바다 위에 던져진 줄 안 배 비장이 궤 속에서 도움을 청하자, 뱃사공으로 가장한 사령(使令)들이 궤문을 열어 준다. 배 비장은 알몸으로 허우적거리며 동헌 대청(大廳)에 머리를 부딪쳐 온갖 망신을 다 당한다.
김삼불 주석본은 희극적 파탄이 최고조에 도달한 이 부분에서 끝난다. 그러나 구활자본에서는 내용이 더 이어진다. 망신을 당한 배 비장은 목사를 하직(下直)하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하여 배를 기다리다가, 애랑이 해남(海南)에 간다고 소문내면서 준비해 놓은 배에 숨어 들어갔다가 다시 애랑을 만난다. 그리고 뒤에 정의현감으로 임명되어 애랑과 함께 부임해서 그 고을을 잘 다스리고 행복을 누린다.
「배비장전」은 판소리 사설이 기록화되면서 소설화된 것이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판소리 사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판소리 사설의 문체적 특징을 수용하고 있다. 판소리로 불린 다른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삽입가요(揷入歌謠)도 발견된다. 김삼불 주석본은 판소리 사설에 더욱 가까운 면이 있고, 구활자본은 소설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방자는 배 비장의 약점과 위선을 폭로하고 파괴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그런 면에서 가면극(假面劇)에 등장하는 말뚝이와 상통한다. 「춘향전」에 나타나는 방자보다도 풍자의 역할을 더 날카롭게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배비장전」의 방자는 판소리 사설이나 판소리계 소설에서 작가의 목소리를 개입시키는 장치로 형상화되는 인물 유형의 하나로 주목할 수 있다.
「배비장전」은 위선적인 인물 또는 위선적인 지배층에 대한 풍자를 주제로 하는 작품이다. 관인 사회의 비리와 야합상(野合相)을 소재로 하여 일반적인 관인 사회를 풍자한다. 이에 따라 날카로운 웃음의 긴장 상태가 계속되는 작품이라는 주장도 있다.
작품 속에서 애랑은 비장에게 수청(守廳)을 드는 노동을 통해 현실의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하위 주체(下位主體)이다. 또한 본토 사람 대 제주 사람, 남성 대 여성이라는 틀 안에서 이중적 하위 주체로 규정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불완전하고 모순되며 이중적인 몸이 남성의 몸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알몸을 드러내면서까지 육체를 활용하여 배 비장 속이기를 자청한다. 결국 애랑은 자기 몸을 천하게 여겼던 배 비장을 자신과 같이 알몸이 되게 만들어 그의 알몸도 놀이 도구의 일부가 되게 함으로써, 수많은 하위 주체에게 새로운 정체성 발견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는 절개를 외치며 자기를 다른 기생들과는 다르다고 차별화했던 「춘향전」 속 춘향의 반항보다 더욱 강렬하고 생명력 강한 저항의 몸짓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배비장전」은 현대적으로 수용되어 문화 콘텐츠화된 예가 많다.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의 창극(唱劇) 「배비장전」(1936 초연), 채만식(蔡萬植)의 소설 「배비장」(1943), 신상옥(申相玉) 감독의 영화 「배비장」(1965), 예그린 악단의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1966 초연), 마당놀이 「배비장전」(1987), 제주 오페라단의 오페라 「나(拏): 애랑 & 배비장」(2013) 등이 그 예이다. 이 중, 창극은 1936년부터 2016년까지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최근에는 여러 방면에서 이 작품을 활용한 문화 콘텐츠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창극 · 뮤지컬 · 오페라의 경우 제주 무가나 민요(民謠)를 비롯하여 제주민의 정서를 잘 표현한 노래의 발굴이 필요하다는 점, 마당놀이의 경우 제주도민에 대한 서울 양반들의 수탈 양상을 서울 자본의 제주도 잠식 또는 현재 진행되는 중국 상업 자본의 제주도 침탈로 변경되어야 한다는 점,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경우 통속극(通俗劇)보다는 해학적(諧謔的)이며 풍자적인 코미디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 캐릭터의 경우 제주도 사람들의 기질을 대변하는 애랑과 방자를 대상으로 개발되어야 한다는 점, 테마 공원의 경우 한라산 계곡의 폭포가 수려한 곳이나 중산간(中山間) 지역에 조성되어야 한다는 점, 문화 축제는 제주목 관아(濟州牧 官衙)나 관덕정(觀德亭)에서 개최되어야 한다는 점 등이다.
「배비장전」은 고전소설 중 보기 드문 희극(喜劇)이므로 계속해서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