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신상옥은 해방 이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연산군」, 「빨간 마후라」 등의 작품에 관여한 영화인으로 영화감독이자 영화제작자이다. 본명은 신태서이다. 1950년대 중반부터 「꿈」, 「젊은 그들」, 「무영탑」, 「성춘향」, 「벙어리 삼룡이」 등 다양한 작품을 연출했다. 1978년 홍콩에서 납북되어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1986년에 북한을 탈출하였다. 2006년에 사망했다. 뛰어난 테크닉으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연출한 영화감독으로 영화산업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사후 한국 영화계에 끼친 지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정의
해방 이후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연산군」, 「빨간마후라」 등의 작품에 관여한 영화인. 영화감독, 영화제작자.
생애/활동사항
1949년 독립하여 영화감독 겸 제작자로 활동했다. 데뷔작인 「악야」는 전쟁으로 1952년 개봉되었다. 1954년 「코리아」를 제작하며 알게 된 배우 최은희와 결혼했다. 이후 신상옥프로덕션을 운영하며 「꿈」(1954),「젊은 그들」(1955),「무영탑」(1957),「지옥화」(1958),「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1959),「로맨스 빠빠」(1960) 등을 연출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영화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1960년 신상옥프로덕션을 ‘신필름’으로 확장한 후, 「성춘향」(1961),「사랑방손님과 어머니」(1961),「연산군」(1962),「폭군연산」(1962),「쌀」(1963),「로맨스그레이」(1963),「빨간 마후라」(1964),「벙어리 삼룡이」(1964),「대원군」(1968),「이조여인 잔혹사」(1969) 등을 연출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이후 ‘신필름’의 무리한 확장으로 부도를 맞아 사명을 바꾸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급기야 1975년 신프로덕션의 대만 합작영화인「장미와 들개」(1975)의 예고편이 검열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사 허가를 취소당했다.
1978년 홍콩에서 납북되어 1986년까지 북한에서 활동했다. 1980년 북한에서 ‘신필름’을 재건해「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소금」(1985),「탈출기」(1984) 등을 제작 · 연출했다. 1986년 오스트리아 빈의 미대사관을 통해 북한을 탈출했다. 1990년 할리우드에서 「닌자키드(3Ninjas)」(1992)를 제작했으며 한국에서는 「마유미」(1990),「증발」(1994) 등을 연출했다. 199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을 지냈으며, 2000년에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다. 2006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그는 대부분의 연출작에서 촬영을 함께 했으며 뛰어난 테크닉으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연출한 1950∼196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이었다. 또한 1960년대 영화산업화의 선두에 선 ‘신필름’의 운영자로 영화산업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영화제국 신필름』(조준형, 한국영상자료원, 2009)
- 『난, 영화였다』(신상옥, 랜덤하우스, 2007)
- 『한국영화감독사전』(김종원, 국학자료원, 2004)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www.kmdb.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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