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영화제작 과정에서 연기·촬영·녹음·편집과정 등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총책임자.
개설
내용
1950년대에는 「춘향전」(1955)의 이규환, 「자유부인(自由夫人)」(1956)의 한형모(韓瀅模), 「시집가는 날」(1956)의 이병일 등 해방 전부터 활약하던 영화감독들 외에 홍성기(洪性麒), 신상옥(申相玉), 유현목(兪賢穆), 김기영(金綺永) 등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 중 「별아 내 가슴에」(1958)의 홍성기는 세련된 멜로드라마의 연출로 유명했다. 「로맨쓰빠빠」(1960), 「성춘향(成春香)」(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등을 연출한 신상옥은 감독으로서 뿐만 아니라 영화제작사인 신필름의 제작자로 활약했다. 또한 나운규의 「아리랑」이후 최대의 성과로 평가받는 리얼리즘 영화 「오발탄(誤發彈)」(1961)을 연출한 유현목과 독특한 표현주의 영화 「하녀(下女)」(1960)의 김기영,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걸작 「만추(晩秋)」의 이만희(李晩熙)는 1960년대 한국영화를 이끈 대표적인 감독이다.
1970년대에는 하길종(河吉鐘), 이장호(李長鎬) 등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하길종은 시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풍자와 허무, 당시의 풍속도를 보여주는 「바보들의 행진」(1975)이 대표작이다. 이장호는 부조리한 현실과 젊은이의 좌절을 그린 「별들의 고향」(1974)을 비롯해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바보선언」(1984) 등 문제작을 연출했다.
1980년대 이후 한국영화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감독은 임권택(林權澤)이다.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한 그는 1980년대 「짝코」(1980), 「만다라」(1981), 「길소뜸」(1985), 「서편제」(1993), 「태백산맥」(1994) 등 화제작을 연출했으며, 2002년 「취화선」으로 제55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1980∼1990년대 주목받는 영화감독으로는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의 배창호(裵昶浩), 「거짓말」(1999)의 장선우(張善宇),「아름다운청년 전태일」(1995)의 박광수(朴光洙) 등이 꼽힌다.
현황
이 시기 한국영화의 질적 성장을 증명하듯 우리 영화감독의 해외영화제 수상도 이어지고 있다. 이창동(李滄東)은 「오아시스」로 2002년 제59회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시」로 2010년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으며, 김기덕(金基德)은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박찬욱(朴贊郁)은 「올드보이」로 2004년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박쥐」로 2009년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홍상수, 봉준호(奉俊昊) 등도 해외에서 주목받는 한국 영화감독이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영화사전』(김광철·장병원, media2.0, 2004)
- 『한국영화감독사전』(김종원, 국학자료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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