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이본이 120여 종이나 되고, 제목도 이본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단일 작품이 아닌 ‘춘향전군(春香傳群)’이라는 작품군으로 보아야 한다. 판소리로 불리다가 소설로 정착되었으리라고 보이는 판소리계 소설의 하나이나, 문장체 소설로 바뀐 것도 있고, 한문본도 있다.
창극·신소설·현대소설·연극·영화 등으로도 개작되었다. 한국문학 작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 또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여러 가지 문제점이 거듭 논란되었다.
남원부사의 아들 이도령과 기생의 딸 춘향이 광한루에서 만나 정을 나누다가, 남원부사가 임기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자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이별한다. 그 다음에 새로 부임한 관리가 춘향의 미모에 반하여 수청을 강요한다. 그러나 춘향은 일부종사(一夫從事)를 앞세워 거절하다 옥에 갇혀 죽을 지경에 이른다.
한편, 이도령은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되어 신관 부사를 탐관오리로 몰아 봉고파직(封庫罷職)시키고 춘향을 구출한다. 이도령은 춘향을 정실부인으로 맞이하여 백년해로를 한다. 그런데 이본에 따라서는 춘향이 다르거나, 춘향과 이도령의 결연이 가지는 성격에도 차이가 있다.
신관 부사가 춘향에게 수청을 강요한 것이 얼마나 부당한가 하는 점도 일정하지 않다. 이 작품은 설화를 소재로 하였을 것으로 생각되어 근원설화(根源說話) 탐색이 여러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그 내용으로는, ① 신원설화(伸寃說話) : 남원에 춘향이라는 기생이 아자제 도령을 사모하다 죽었는데, 원귀가 되어 남원에 재앙을 가져오자 이를 액풀이하는 제의설(祭儀說)에 근원을 두고, 양진사(梁進士)가 제문(祭文)으로 창작하였다는 설.
② 암행어사 설화(暗行御史說話) : 노진(盧稹)·조식(曺植)·성이성(成以性)·김우항(金宇杭)·박문수(朴文秀) 등의 고사에서 야담으로 형성된 암행어사 출두의 설화가 「춘향전」 후반부와 같이 부연되었다는 데에서 「춘향전」이 그 주제를 따왔다는 설.
③ 조선조 야담에 보이는 도령과 기생과의 애련설화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설(成世昌의 설화가 이에 해당된다.)인데, 이는 「춘향전」 전반부의 제재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④ 기타 설화 : 「춘향전」 속에 삽입된 제재로서의 춘향이 이도령에게 수기(手記)를 받는 이야기, 춘향이 판수에게 해몽을 청하는 이야기, 암행어사 출두장면에서 이어사의 ‘금준미주(金樽美酒)’ 한시의 작시(作詩) 설화 등이 조선조 야담에 나옴으로써 이를 수용하였다는 설.
⑤ 이들 설화가 열녀설화(烈女說話)·조선조 유교 윤리와 결부하여 「춘향전」 생성의 제재가 되었다고 보는 설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화도 「춘향전」과 완전히 같은 것은 없으므로, 이를 소재로 어떤 창작자에 의하여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보여진다. 이 창작설을 뒷받침하여 주는 것은 「춘향전」에 내재하는 근본적인 모순이다.
즉, 당시의 사회상으로 보아 16세의 이도령이 서울로 올라가 소과(小科)·대과(大科)에 합격하여 왕의 비서인 승지가 되기까지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린다. 이에 비하여 남원부사는 3년이라는 한정된 시한이 있다.
그러므로 현행 「춘향전」이 이어사가 남원에 내려와 춘향을 구출하는 시한이 1년 내지 1년 반이므로, 현실적으로 「춘향전」이 성립할 수 있는 개연성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설화를 합성한 원 창작자의 작극술(作劇術, Dramaturgie)이 「춘향전」의 주조 속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현재 남원에 남아 있는 춘향과 관련된 여러 유적들, 즉 춘향의 사당, 춘향의 묘, 성안의부사(成安義府使)의 기적비, 박석치(礡石峙), 춘향이 버선발로 이도령을 따라갔다는 버선꼴 밭 등은 다 「춘향전」이 예원(藝苑)에 헌전된 이후에 견강부회(牽强附會)된 민간어원설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남원에서는 매년 5월에 ‘춘향제’가 열리고 있다. 이것은 「춘향전」이 현대의 신화가 되어 있다는 증거는 되지만, 춘향을 실존인물로 비교하여 생각하려는 타당성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 「춘향전」을 더늠으로 한 광대는 많으나 그 실지 창본이 남아 있는 것은 얼마 없다. 신재효(申在孝)본이 있기는 하나 광대는 아니므로 창본이라 하기는 어렵다. 현존본으로는 이선유(李善有)본과 박기홍(朴基弘)조에 의한 이해조(李海朝)의 「옥중화(獄中花)」, 이동백(李東伯)본 등이 있다.
이를 분석하여 보면, 완판의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와 문체상의 차이는 없다. 이를 기준으로 하여 볼 때,4·4조를 기본으로 하는 운문으로 되어 있고, 삽입가요가 있고, 어미가 현재 진행 종지형으로 되어 있는 문체상의 특징이 있다. 이를 기준으로 「춘향전」 이본을 분석하여 보면, 대부분 판소리계본이라 이를 축약한 형태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본으로는 판본 9종이 있는데, 경판본(京板本)이 4종, 완판본(完板本)이 3종, 안성판본(安城板本)이 1종이다. 이들은 대개 1850년 이후의 판본이다. 사본으로는 영조 30년(1754) 유진한(柳振漢)의 한시(漢詩) 「춘향가」를 필두로 하여 한문본이 5종, 한글 사본이 약 30여 본이나 되어 앞으로도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
그 중 자수가 많은 것은 「남원고사(南原古詞)」로서 「춘향전」 문학의 압권을 이루고 있다. 신문학기의 활자본으로는 이해조의 「옥중화」(1912), 최남선(崔南善)의 「고본춘향전(古本春香傳)」(1913)을 비롯하여 38책이 있으며, 활판본·한문본 4책, 번역본(일본·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독일) 등을 합하여 16종이 있고, 희곡 몇 본 등이 있다.
이 중 사본 판본에는 판소리계 본이 많으며, 또 이 계통을 제외하고는 행문(行文)이 같은 사설로 나가는 것이 없다는 것은 바로 「춘향전」 문학의 민속예술적 측면을 드러내 주는 좋은 증거이기도 하다.
이 중 계통을 따진다면, 완판의 「별춘향전(別春香傳)」 병오판(丙午板) 33장본, 「열녀춘향수절가」 84장본은 상호 적층관계(積層關係)를 명확히 할 수 있어 특이하며, 경판·안성판 계통은 「남원고사」와 한 계통을 이루고 있다. 신분관계로 따지면 춘향의 신분이 기생으로 되어 있는 것이 고형이고, 신재효의 「춘향가」에서는 성천총(成千摠)의 서녀로 나와 중간형을 이루며, 「열녀춘향수절가」의 성참판(成參判)의 서녀로 나와 있는 것은 갑오개혁 이후의 신분상승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후기본적인 색채가 짙다.
이해조의 「옥중화」는 박기홍조에 의거하여 고쳐 지은 것으로 보여지며, 활판본 계통은 대개 이 「옥중화」에 의거하고 있다. 이들 이본 중 가장 특이한 것이 유진한의 「춘향가」이며, 이의 정착이 1754년이므로 가장 오래된 것인 동시에 여기에 “騷翁爲作打令辭好事相傳後千祀(소옹위작타령사호사상전후천사)”라고 기록되어 있어 「춘향전」의 판소리 생성을 뒷받침하여 주고 있다.
「춘향전」은 숙종 말이나 영조 초에 광대의 판소리에서 비롯된 이후, 판소리뿐만 아니라 소설·희곡·오페라·영화 등 다양한 예술양식을 통하여 현대적 변모를 계속하고 있는 성장하는 고전이다.
민족고전의 대표격인 「춘향전」에 대한 연구는 1920년대의 단편적 비평에서부터 1980년대의 본격 연구에 이르기까지 60년에 걸친 연구사가 있다. 이들 연구는 소설 「춘향전」 연구가 주대상이 되어 장르론적 측면, 작품론적 측면과 소설사적인 측면이 주로 검토되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의 연구 업적은 조윤제(趙潤濟)의 『교주춘향전(校註春香傳)』이 박문서관에서 나오면서 본격화 되었고, 이때부터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가 연구의 주요대본으로 선택되기 시작하였다.
또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거치면서 많은 연구자들에 의한 본격적인 학술 논문과 함께 김동욱(金東旭)의 『춘향전연구(春香傳硏究)』와 같은 통합론적 업적이 단행본으로 출판됨으로써 연구가 심화(深化)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앞 시대에 주요 관심사였던 발생론에 대한 관심을 극복하면서, 서사구조나 문체에 대한 연구들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구조주의 방법과 역사주의 방법 등 새로운 비평 방법에 근거한 업적들과 함께 「춘향전」 주제론이 연구의 중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남원고사」라는 새 이본이 발견됨으로써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로만 쏠리던 관심이 보다 다양한 대본을 통한 연구로 확산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그 결과, 김동욱 등이 내놓은 「춘향전 비교연구」는 이본의 체계적 비교를 통하여 「춘향전」을 기생계(妓生系) 춘향전과 비기생계(非妓生系) 춘향전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남원고사」는 기생계에 속하고 「열녀춘향수절가」는 비기생계에 속함을 밝혀 「춘향전」의 문학본질 탐색을 위한 새 바탕을 마련하였다.
1980년대 이후로는 새로운 이본 발견이 주춤한 반면, 「춘향전」의 작품 분석에 새로운 방법론을 적용하는 연구가 눈에 띤다. 또한 지금까지의 자료를 총정리하여 제시하는 노력이 있었는데, 총 8책으로 이루어진 『춘향예술사자료총서』(설성경 편, 국학자료원, 1998)가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대춘향전군’이라 할 수 있는 다수의 이본을 바탕으로 한 거시적 접근이 용이하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춘향전」의 작품 세계를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연구성과가 기대된다.
이와 아울러 「춘향전」의 현대적 변모에서 보여준 다양한 예술양식을 통한 여러 형상물을 심층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춘향전」이 민족적 공감을 얻는 이치를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19세기까지의 「춘향전」만을 다루던 전통적 접근 방법을 극복하고, 20세기의 「춘향전」까지 포함하는 탈시대적 연구의 길이 열리게 되리라고 본다.
유동적인 「춘향전」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고전 「춘향전」과 현대 「춘향전」을 하나의 연속선상에 올려놓음으로써 그 참모습의 객관화를 가능하게 한다. 또 이것은 「춘향전」의 고전으로서의 생명과 그 본질을 찾는 첩경이 되어, 「춘향전」의 예술적 가치가 총체적 구조로 밝혀질 수 있음을 뜻한다.
「춘향전」은 그 공간배경이 남원이기 때문에 남원 지역에는 ‘열녀춘향사(烈女春香祠)’라는 사당이 있다. 이 사당을 통하여 실존하였던 것으로 믿고 있는 춘향의 높은 정절을 기리며 그 넋을 추모한다. 춘향의 생일로 믿는 음력 4월 8일에는 광한루 동편에 자리잡고 있는 춘향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