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항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이조참판, 대사성,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갑봉(甲峰), 좌은(坐隱)
  • 제중(濟仲)
  • 시호충정(忠靖)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갑술옥사|신임사화
  • 본관김해(金海)
  • 사망 연도1723년(경종 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정언|수찬|교리|경상도관찰서|이조참판|대사성|이조판서|우의정
  • 출생 연도1649년(인조 2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해순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19일
기해기사계첩 중 김우항 초상 미디어 정보

기해기사계첩 중 김우항 초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이조참판, 대사성,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제중(濟仲), 호는 갑봉(甲峰) · 좌은(坐隱). 김진선(金盡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덕승(金德承)이고, 아버지는 청송부사 김홍경(金洪慶)이며, 어머니는 김광혁(金光爀)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69년(현종 10) 사마시에 합격, 1675년(숙종 1) 유생들과 더불어 자의대비(慈懿大妃) 복상 문제로 송시열(宋時烈)이 유배되자 이의 부당함을 상소하였다. 1681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 전적(典籍) · 지평(持平)을 거쳤다.

1686년 정언(正言)이 되어 궁가(宮家)에서 저수지를 만든다는 구실로 민전(民田)을 침해하고 있음을 상소하였다. 그 뒤 예조좌랑 · 병조좌랑을 역임하고, 1689년 홍문록(弘文錄) · 도당록(都堂錄)에 올랐다. 그 해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사직했는데, 일찍이 송시열과 함께 유배된 이상(李翔)을 변호한 일로 평안도의 철산(鐵山)에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났다.

1694년 갑술옥사소론이 집권하자, 다시 기용되어 부수찬(副修撰) · 수찬 · 부교리(副校理) · 교리 · 필선(弼善) · 집의(執義)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경상도관찰사가 되고, 1696년 회양부사, 1697년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하며 진휼 정책(賑恤政策)을 잘해 칭송을 받았다.

1698년 승지에 이어 1699년 대사간, 1702년 개성유수, 이듬해 승문원제조 · 이조참판, 1704년 대사헌 · 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1706년 예조참판 · 경기도관찰사, 1707년 한성부판윤이 된 뒤 형조 · 병조 · 이조판서를 거쳤다.

1710년 호조판서가 되어 북한구관당상(北漢句管堂上)을 겸하며 산성과 행궁의 축조 책임을 맡았다. 1712년 과옥(科獄)이 일어나자 소론으로서 자기의 당여를 두둔하지 않고 엄정하게 사실을 규명해 소론으로부터 배척을 받기도 하였다.

이듬해 우참찬 · 예조판서 · 판의금부사를 거쳐 우의정이 되었으며, 1716년 내의도제조(內醫都提調) · 판중추부사를 역임하고, 1721년(경종 1) 영중추부사 가 되었다. 1722년 신임사화로 노론의 사대신이 화를 입자 이의 부당함을 적극 주장했으며, 또 김일경(金一鏡)의 사친추존론(私親追尊論)을 반대하다가 화를 입었다.

평생을 청빈하게 살았으며 사람들로부터 장자(長子) 또는 완인(完人)이라 불렸다. 저서로 『갑봉집(甲峰集)』이 있다.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매산집(梅山集)』

주석

  • 주1

    : 사마시 급제 : 『기유식년사마방목(己酉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9-17])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조선 시대에, 왕실의 일부인 궁실(宮室)과 왕실에서 분가하여 독립한 대원군ㆍ왕자군ㆍ공주ㆍ옹주가 살던 집을 통틀어 이르던 말. 우리말샘

  • 주4

    : 예전에, 백성들의 사유지를 이르던 말. 우리말샘

  • 주5

    : 조선 숙종 15년(1689)에 소의 장씨 소생의 아들을 원자로 정하는 문제로 정권이 서인에서 남인으로 바뀐 일. 이에 반대한 서인이 지지 세력인 남인에 의하여 패배하였으며, 송시열은 제주도로 유배된 후 사사되었다. 우리말샘

  • 주6

    : 조선 숙종 20년(1694)에 당시의 집권층인 남인(南人)이 폐비 민씨의 복위 운동을 꾀하던 일파를 제거하려다 도리어 화를 입은 사건. 이를 계기로 남인계는 와해되고 소론계가 집권하게 되었으며, 정계는 노론과 소론의 양립 국면으로 전환하였다. 우리말샘

  • 주7

    : 조선 시대에, 과거(科擧)의 부정으로 일어나던 형사 사건. 숙종 때의 기묘과옥이 유명하다. 우리말샘

  • 주8

    : 조선 경종 원년(1721)부터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노론과 소론 사이에 일어난,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파의 싸움으로 화를 입던 일. 노론 사대신(四大臣)의 주장으로, 왕의 동생 연잉군(延礽君)을 세제(世弟)로 책봉하고 나라의 일를 대신하게 하자, 소론이 불가함을 상소하고, 이들 사대신이 역모를 꾀한다고 무고하여 사대신이 극형에 처해지게 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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