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고산찰방, 종성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숙하(叔夏). 강세봉(姜世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즙(姜楫)이고, 아버지는 강여재(姜汝載)이며, 어머니는 신용(申涌)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65년(현종 6)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주서(注書)를 거쳐 1671년 정언이 되고, 이듬해 홍문록(弘文錄)에 올랐으며, 사서(司書)로서 사은 겸 동지사의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674년 수찬이 되었으나 숙종이 즉위한 뒤 예송논쟁(禮訟論爭)에서 공격받던 송시열(宋時烈)을 구호하다 파직당하였다. 1680년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남인이 실각하면서 부교리로 복직되었고, 같은 해 고산찰방(高山察訪)으로 올린 장계에서 복창군(福昌君) · 복선군(福善君)의 모역문제를 제기하였다. 뒤에 종성부사가 되었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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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二(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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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동지사 수행 : 현종개수실록 26권, 현종 14년 3월 16일. "사은 겸 동지사 창성군 필 등이 청나라에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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