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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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집현전·홍문관·승문원·교서관 등의 정·종5품의 관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영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시대 집현전·홍문관·승문원·교서관 등의 정·종5품의 관직.

내용

집현전과 홍문관의 교리는 정5품직이었으며, 승문원과 교서관의 교리는 종5품직이었다. 교서관에는 1인, 기타 기관에는 2인씩 정원을 두었다.

집현전의 교리는 1399년(정종 1)에 처음 두었으나 유명 무실하였고, 1420년(세종 2)에 집현전을 재건, 강화하면서 다시 2인을 두었으나 1456년(세조 2) 집현전이 혁파되면서 폐지되었다. 1470년(성종 1) 홍문관이 설치되어 집현전을 계승하면서 2인의 교리직도 부활되었다.

홍문관교리는 문한(文翰)의 일뿐만 아니라 경연관·사관(史官)·지제교(知製敎)를 당연직으로 겸했고, 삼사(三司)의 일원으로 언론 활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승문원교리는 1409년(태종 9) 고려시대 이래의 문서응봉사(文書應奉司)를 개편, 강화하면서 처음 설치하였다. 이듬해 승문원으로 개칭하면서 2인의 정원을 확정하였다. 외교문서의 작성과 검토에 관한 일을 맡았으나 중종 이후에 폐지되었다.

교서관교리는 1401년(태종 1) 교서감을 교서관으로 개편하면서 처음 설치하였다. 서적의 간행, 향축(香祝)·인문(印文)의 필사에 관한 일을 담당하였다. 교서관의 장관인 판교(判校)는 타관이 겸직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중기 이후에 폐지되어 사실상 교서관의 책임자는 교리였다.

직무가 중요하고 번다하여 중기에는 겸교리 3인을 신설했으나 1750년(영조 26)에 2인을 감하였다. 뒤에 교서관이 규장각 외각으로 편입되면서 겸교리 1인은 규장각(內閣) 직각(直閣)이 겸임하게 하였다.

참고문헌

  • - 『정종실록(定宗實錄)』

  • - 『태종실록(太宗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경국대전(經國大典)』

  • - 『속대전(續大典)』

  • - 『대전회통(大典會通)』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 『홍문관지(弘文館志)』

  • - 『규장각지(奎章閣志)』

  • - 「홍문관(弘文館)의 성립경위(成立經緯)」(최승희, 『한국사연구(韓國史硏究)』5, 1970)

  • - 「규장각고(奎章閣考)」(김용덕, 『중앙대학교논문집(中央大學校論文集)』2,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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