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사복시정, 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예조정랑 · 필선(弼善)을 거쳐 1625년(인조 3) 동지사서장관(冬至使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629년에는 해운판관(海運判官)이 되어 전주 등 다섯 고을에서 직납을 원하지 않는 이유를 들어 조운(漕運)의 폐를 상소하였다. 이듬해 지평(持平)이 되고 이어서 장령을 거쳐 1634년 헌납(獻納)이 되었다. 이 때, 1617년 생원시의 장원 이영구(李榮久)가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론을 상소하면서 함께 합격한 사람들의 이름을 도용하여 연명으로 하였으므로, 김덕승의 이름도 들어 있어 문제가 되기도 하였으나 무고임이 밝혀져 무사하였다.
1635년에 다시 장령이 된 뒤 사예(司藝) · 상례(相禮) 등을 지내고, 사복시정(司僕寺正) · 목사(牧使)에 이르렀다. 경사 외에도 운서(韻書)를 깊이 연구하였고 그림에 능하였으며, 군서(群書)를 연구하여 성력제가(星曆諸家)에도 조예가 깊었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동국문헌화가편(東國文獻畵家編)』
- 『서계집(西溪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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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 급제 : 『만력45년정사증광사마방목(萬曆四十五年丁巳增廣司馬榜目)』(한국국학진흥원[영덕 영양남씨 난고(蘭皐[南慶薰]) 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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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九(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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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조운 폐단 상소 : 『인조실록』 20권, 1629년(인조 7) 2월 15일. "해운 판관 김덕승이 조운의 폐단에 대해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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