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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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북한강변에서 시와 술로 세월을 보낸 박응서 등 일곱 명의 문인들.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계축옥사
  • 성별남성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계찬 (전 동아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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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북한강변에서 시와 술로 세월을 보낸 박응서 등 일곱 명의 문인들.

내용

영의정 박순(朴淳)의 서자 박응서, 목사 서익(徐益)의 서자 서양갑(徐羊甲), 관찰사 심전(沈銓)의 서자 심우영(沈友英), 병사 이제신(李濟臣)의 서자 이경준(李耕俊), 상산군(商山君) 박충간(朴忠侃)의 서자 박치인(朴致仁) · 박치의(朴致毅), 김평손(金平孫) 등 일곱 사람은 모두 고관의 서자출신들로서 관계에 진출하지 못함을 불평, 세상을 비웃으며 중국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을 모방, 스스로 ‘칠우’라 불렀다.

이들은 여주의 북한강변에 ‘무륜(無倫)’이라는 정자를 짓고 시와 술로써 소일하며, 먹을 것이 없으면 도둑질도 서슴지 않았다. 광해군 즉위초에, 이들 가운데 서양갑 · 심우영 · 이준경 · 김평손 등이 서자도 관리에 등용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연명으로 상소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이들의 불만은 점차 높아져 여러 가지 악행으로 번져나갔는데, 1612년(광해군 4)에는 새재[鳥嶺]에서 은상인(銀商人)을 죽이고 은 수백냥을 약탈하였다가 이듬해 모두 검거되었다.

이때 화를 면해주겠다는 대북파(大北派) 이이첨(李爾瞻) · 정인홍(鄭仁弘) 등의 꾐에 빠져, 김제남(金悌男)의 사주로 영창대군을 옹립하기 위한 거사자금을 마련하고자 저지른 일이라고 거짓 자복하였다.

이 때문에 영창대군은 강화로 유배되었다가 살해되고, 김제남은 사사되는 등 이른바 계축옥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명륜록(明倫錄)』

  • - 『택당별집(澤堂別集)』

  • - 「칠서지옥」(이상백, 『이병도박사화갑기념논문집』,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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