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북한강변에서 시와 술로 세월을 보낸 박응서 등 일곱 명의 문인들.
내용
이들은 여주의 북한강변에 ‘무륜(無倫)’이라는 정자를 짓고 시와 술로써 소일하며, 먹을 것이 없으면 도둑질도 서슴지 않았다. 광해군 즉위초에, 이들 가운데 서양갑 · 심우영 · 이준경 · 김평손 등이 서자도 관리에 등용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연명으로 상소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이들의 불만은 점차 높아져 여러 가지 악행으로 번져나갔는데, 1612년(광해군 4)에는 새재[鳥嶺]에서 은상인(銀商人)을 죽이고 은 수백냥을 약탈하였다가 이듬해 모두 검거되었다.
이때 화를 면해주겠다는 대북파(大北派) 이이첨(李爾瞻) · 정인홍(鄭仁弘) 등의 꾐에 빠져, 김제남(金悌男)의 사주로 영창대군을 옹립하기 위한 거사자금을 마련하고자 저지른 일이라고 거짓 자복하였다.
이 때문에 영창대군은 강화로 유배되었다가 살해되고, 김제남은 사사되는 등 이른바 계축옥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명륜록(明倫錄)』
- 『택당별집(澤堂別集)』
- 「칠서지옥」(이상백, 『이병도박사화갑기념논문집』,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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