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동지의금부사, 부총관,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큰아버지 감찰 김원상(金元祥)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7년(광해군 9)에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에 유폐시키려는 폐모론에 극력 반대하다가 삭직당하였다. 인조반정 후 사간이 되어 인조의 사친추숭(私親追崇)의 잘못을 주장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이 포위되자, "척화신(斥和臣)을 적에게 보내자."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반대하는 소를 올렸으나, 인조의 동의를 얻음으로써 화를 부를 소지를 없앴다. 벼슬이 형조참판에 이르렀다. 글씨에 뛰어났는데, 초서 · 예서에 능하였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낙전당집(樂全堂集)』
- 『해동호보(海東號譜)』
- 『동국문헌(東國文獻)』필원편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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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 급제 : 『만력29년신축사마방목(萬曆二十九年辛丑司馬榜目)』(한국국학진흥원[안동 풍산김씨 허백당(虛白堂[金楊震]) 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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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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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김대덕의 상소 : 『인조실록』 34권, 1637년(인조 15) 1월 23일. "우윤 김대덕이 상소하여 신하를 결박하여 보내는 의논의 정지를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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