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은 2인이다. 조선왕조 건국 직후에 반포된 태조신반관제에 의하면 사헌부에 정5품의 잡단(雜端) 2인이 있었는데, 이 잡단이 후에 지평으로 바뀐다. 즉, 1401년(태종 1) 7월 관제개혁 때 잡단을 지평으로 고치고 이것이 그대로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사헌부의 직무는 『경국대전』에 시정(時政)을 논집(論執)하고, 백관을 규찰하고, 풍속을 바로잡고, 원악(寃抑)을 풀어주고, 남위(濫僞)를 금하는 등의 일을 맡는다고 되어 있는 것처럼, 백관의 비위사실에 대한 탄핵감찰권(彈劾監察權)과 일반범죄에 대한 검찰권을 아울러 행사할 수 있는 동시에 불복공소(不服控訴)에 대한 고등법원으로서의 구실까지 겸하는 등 왕지(王旨)를 받아 법률을 집행하는 법사(法司)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인사(人事)와 법률개편의 동의 및 거부권행사라고 할 수 있는 서경권(署經權) 등 국정전반에 걸쳐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지평을 포함한 대관(臺官)은 사헌부의 기간요원이기 때문에 그 책무는 막중하였으므로 자기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직언할 수 있는 강직한 젊은 엘리트들이 임명되었는데, 그 대부분이 문과에 급제한 자로서 직배(直拜)하거나 승문원·성균관·홍문관 등을 거친 자들이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