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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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인물
해방 이후 「강령탈춤」의 가면 제작과 반주악사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9년
사망 연도
1992년
출생지
황해도 해주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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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강령탈춤」의 가면 제작과 반주악사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
내용

1909∼1992. 황해도 해주출생. 16세 때 먹티기라는 악사로부터 해서삼현육각(海西三絃六角)을 배운 뒤 이호윤과 소리와 음악 이론에 밝았던 장양선(張良善)으로부터 배웠다. 또한, 최용락(崔龍樂) · 오순석(吳淳錫)으로부터는 「강령탈춤」을 배웠다.

그가 배운 해주삼현은 긴짜 · 줄염불 · 염불 · 자진염불 · 도드리 · 자진도드리 · 타령 · 타령시나위 · 늦타령 · 자진타령 · 길군악 등이라 한다. 먹티기 · 이호윤 · 장양선과 함께 각종 향연과 축제에 참가하여 해주삼현을 연주하였는데, 특히 「강령탈춤」의 반주악사 구실을 하였던 것이 뒤에 유명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광복 후에는 황해도 연백에서 살다가 6·25 후에 경기도 강화에서 살았고, 1964년부터는 서울에서 살았다. 1970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해주삼현육각의 유일한 보유자이며 피리의 기량이 뛰어나고, 「강령탈춤」의 탈 제작도 능하였다.

참고문헌

『이 사람 이후』(박성회, 월드북, 1991)
『명인명창』(동아일보사, 1987)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無形文化財調査報告書)』 4-삼현육각-(문화재관리국,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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