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초기의 출판은 관(官)이 주도했지만, 중기로 접어들며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경제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인 서울 · 전주 · 나주 · 태인 · 안성 · 대구 등에서 민간 업자에 의한 간행이 이루어졌다. 목판에 새겨 인쇄하는 등의 방식이었기에 대량 생산과 판매를 통한 이윤 추구가 가능했던 것이다. 경판본은 여러 지역 가운데 특히 서울에서 출판한 방각본을 부르는 말이다.
서울의 경우, 조선의 중심지였던 만큼 방각본 출판도 전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경기(京畿) · 광통방(廣通坊) · 남곡(南谷) · 주1 · 무교(武橋) · 주2 · 석교(石橋) · 석동(石洞) · 주3 · 주4 · 어청교(漁靑橋) · 유곡(由谷) · 주5 · 유천(由泉) · 자암(紫岩) · 포동(布洞) · 합동(蛤洞) · 주6 · 화산(華山) · 주7 · 효교(孝橋) 등의 방각 업소가 등장해 경쟁적으로 책을 출간했는데, 이들은 대체로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상업 유통의 핵심지이다. 경판본의 매 권 마지막 간기를 통해 이들 방각 업소의 이름, 위치, 간행 연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간례휘찬(簡禮彙纂)』 · 『사례편람(四禮便覽)』 등의 예서, 『맹자집주대전(孟子集註大全)』 · 『중용언해(中庸諺解)』 등의 경서, 『동몽선습(童蒙先習)』 · 『천자문(千字文)』 · 『어정규장전운(御定奎章全韻)』 등의 어학 · 학습서, 『통감절요(通鑑節要)』 · 『십구사략통고(十九史略通攷)』 등의 역사서, 『고문진보대전(古文眞寶大全)』 · 『당시장편(唐詩長篇)』 등의 총집, 『고사촬요(攷事撮要)』 · 『규합총서(閨閤叢書)』 등의 백과사전,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 · 『한양가(漢陽歌)』 등의 가집 등 다양한 분야의 방각본이 망라되어 나타나는 것이 경판의 특징이다. 한편, 그 중에서도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소설류인데, 1780년 서울의 방각 업소 경기(京畿)에서 간행한 『임경업전(林慶業傳)』이 현재로서는 가장 이른 시기의 경판본 소설로 확인된다. 그 외에 『강태공전(姜太公傳)』 · 『곽분양전(郭汾陽傳)』 · 『구운몽(九雲夢)』 · 『금방울전(金방울傳)』 · 『금향정기(錦香亭記)』 · 『도원결의록(桃園結義錄)』 · 『남정팔난기(南征八難記)』 · 『백학선전(白鶴扇傳)』 ·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 『삼국지(三國志)』 · 『삼설기(三說記)』 · 『서유기(西遊記)』 · 『수호지(水滸誌)』 · 『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 · 『숙향전(淑香傳)』 · 『신미록(辛未錄)』 · 『심청전(沈淸傳)』 · 『쌍주기연(雙珠奇緣)』 · 『옥주호연(玉珠好緣)』 · 『용문전(龍門傳)』 · 『울지경덕전(蔚遲敬德傳)』 · 『월봉기(月峰記)』 · 『월왕전(越王傳)』 · 『임장군전(林將軍傳)』 · 『임진록(壬辰錄)』 · 『장경전(張景傳)』 · 『장풍운전(張風雲傳)』 · 『장한절효기(張韓節孝記)』 · 『장화홍련전(薔花紅蓮傳)』 · 『제마무전(諸馬武傳)』 · 『조웅전(趙雄傳)』 · 『진대방전(陳大方傳)』 · 『토생전(兎生傳)』 · 『한양가(漢陽歌)』 · 『현수문전(玄壽文傳)』 · 『홍길동전(洪吉童傳)』 · 『흥부전(興夫傳)』 · 『황운전(黃雲傳)』 등 50여 종의 소설이 있다.
경판 방각 소설 판본을 기준으로, 경판본은 완판본에 비해 글씨를 작게 하여 한 장에 많은 내용을 담아 한 권의 분량을 적게 만들었으며, 한 권으로 먼저 간행한 다음 두 권이나 세 권으로 나누어 판매하기도 했다. 완판본 한 권의 분량이 2080여 장 사이로 비교적 고르게 분포하는 것과 달리, 경판본 한 권의 분량은 1665장 사이에 분포하되 대개 20~30장대에 집중되어 내용 · 분량 면에서 축약의 경향이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판심에 상화문 · 상하묵 · 상묵 · 상백 어미 등을 새겼는데, 대부분은 꽃잎 4장 모양을 새긴 상화문 어미이다. 형태적으로는 테두리를 단선으로 두르고 행과 행 사이를 구분하는 선을 넣지 않는 등 전체적으로 단순하게 판식을 구성하면서,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행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판식을 조밀하게 구성하였다.
경판본은 당초 광통교 부근에서 시작해 을지로 입구 일대, 남대문, 서소문 밖, 명륜동, 창신동 등지를 전전하며 출간 · 유통되었으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활판본에 밀리게 되었다. 서울에서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까지 방각본의 명맥을 이은 곳은 서점이자 출판사였던 백두용(白斗鏞)의 한남서림(翰南書林)이다. 한남서림은 직접 판목을 판각하는 한편, 유동이나 송동 · 홍수동에서 판각한 판목을 인수하여 출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활판 인쇄가 보편화되고 독자들 역시 활판본 도서를 찾게 됨에 따라 이곳의 방각본 역시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