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감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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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 / 소미가숙점교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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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
문헌
송나라 휘종 연간에 강지가 사마광이 지은 『자치통감』을 간추려 엮은 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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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통감절요』는 송나라 휘종 연간에 강지가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간추려 엮은 역사서이다. 『자치통감』은 주(周) 위열왕부터 오대 주세종 현덕 6년(959)까지에 이르는 1,362년간의 역사를 294권에 수록한 통사이다. 편년체로 군국대사(軍國大事)와 군신들의 언행을 서술하면서, 중간에 ‘신광왈(臣光曰)’이라 하여 논평을 더하였다. 분량이 방대한 『자치통감』을 강지가 전체 50권 분량으로 추렸다. 『통감절요』는 주자가 높이 평가하면서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이 책은 선비들의 필독서이자 무장들의 병서로 애독되었다.

목차
정의
송나라 휘종 연간에 강지가 사마광이 지은 『자치통감』을 간추려 엮은 역사서.
내용

50권 15책.

저자는 숭안현(崇安縣) 사람으로, 자가 숙규(叔圭)이다. 『역경(易經)』에 조예가 깊었고, 은거하여 여러 차례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학문에 힘을 쏟았다. 휘종 때 태사(太史)가 처사(處士)의 별인 소미성(小微星)의 출현을 상주하여, 유일(遺逸)을 천거하라는 명이 있었는데, 강지는 세 차례에 걸친 초빙에도 불구하고 끝내 출사하지 않았다. 이에 휘종은 그에게 ‘소미선생(小微先生)’의 호를 하사하였다. 『통감절요』를 흔히 ‘소미통감’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이다.

사마광의 『자치통감』은 본래 294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된 편년체의 역사서이다. 전대 주로 박학다식의 학문 추구 경향으로 역사의 기술이 분찬법(分纂法)에 의해 기술되어 사가(史家)의 의식이 거의 드러나지 못했던 데 반하여, 『자치통감』은 『좌전』의 체재를 모방하여 정확한 사료와 근거로 직필함으로써 저술자의 포폄(襃貶)의식을 드러내는 편년체 역사서의 모범을 부활시킨 공로가 컸다.

『자치통감』은 주(周)나라 위열왕(威烈王) 23년(기원전 403)에서부터 오대 주세종(周世宗) 현덕(顯德) 6년(959)까지에 이르는 1,362년간의 역사를 294권에 수록한 통사(通史)이다. 여기에 별도로 자료의 취사선택의 이유를 수록한 『통감고이(通鑑考異)』 30권과 『통감목록』 30권을 더하면 354권의 거질(巨帙)이 된다. 서술 방식은 편년에 따라 군국대사(軍國大事)와 군신들의 언행을 서술하는 한편, 중간중간에 ‘신광왈(臣光曰)’이라 하여 논평을 더해 역대 치란흥망의 자취를 밝혔다. 이후 『자치통감』은 사학의 강령(綱領)이 되는 중요한 저술로 존중되었다. 다만, 분량이 너무 방대하여 후인들이 이를 모두 읽기 힘든 폐단이 있었다. 이후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취요(取要)의 작업이 이루어졌으나, 너무 소략하거나 번다하였다.

이에 강지가 주기(周紀) 5권을 2권으로, 진기(秦紀) 40권을 5권으로, 송기(宋紀) 16권과 제기(齊紀) 10권을 1권으로, 양기(梁紀) 22권을 1권으로, 진기(陳紀) 10권을 1권으로, 수기(隋紀) 8권을 1권으로, 당기(唐紀) 81권을 14권으로, 후량기(後梁紀) 8권과 후한기(後漢紀) 4권을 1권으로, 후주기(後周紀) 5권을 1권으로 줄여, 전체 50권의 분량으로 추린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당시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고, 강씨의 가숙(家塾)에서만 전해지다가, 강묵(江默)이 주자의 문하에 드나들면서 이 책의 가치를 질정(質正)하자, 주자가 매우 칭탄하여 높이 평가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선비들이 다투어 전사(傳寫)하며 중히 여기게 되었고, 마침내 1237년 강연(江淵)이 원래의 취요에 윤색과 음주(音注)를 상세히 보태어 간행하기에 이르렀다. 처음 간행시 강용(江鎔)은 그 서문에서 강지의 절요가 ‘상략적의(詳略適宜)’하고, 특히 양한(兩漢)과 수당(隋唐)의 취요는 ‘정화필비(精華畢備)’하고, 육조 · 오대의 취요는 ‘수말구존(首末具存)’하다는 평을 더한 바 있다.

그러나 강연의 보완을 통하여 저술이 간행되는 과정에서 당시 쟁점이 되었던 정통론의 영향으로 얼마간의 다르게 고쳤다. 주자도 『자치통감』의 가치를 존중했으나 별도로 『통감강목(通鑑綱目)』을 기술하여, 정통의 기준을 확립하려 하였다. 특히, 『자치통감』에서 삼국 중에 촉(蜀)을 정통으로 보지 않고 위(魏)를 정통으로 본 것은 두고두고 논란거리가 되었다. 이에 주자는 『통감강목』에서 촉한을 정통으로 세우고, 남북조에서는 동진(東晉)을 정통으로 삼는 등 포폄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었다.

『통감절요』 또한 이러한 영향으로 보완의 과정에서 주난왕(周赧王)의 입진(入秦) 이후가 진기(秦紀)에 들어 있던 것을 ‘동주군(東周君)’에 편입시켰고, 촉한을 정통으로 기술하는 한편, 조위(曹魏)를 비정통으로 보는 등 도덕적 사관을 한층 강화하였다. 특히, 우리 나라의 경우 조선시대에 와서 주자학이 절대적으로 숭봉됨에 따라 『자치통감』은 정통론에 어긋난다 하여 점차 소외되었고, 대신 주자가 높이 평가했던 『통감절요』가 존중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이에 이 책은 모든 선비들의 필독서로 중시되었고, 무장(武將)들에게까지 병서의 일종으로 애독되었다.

이 책은 역대 사서(史書)의 편찬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고, 여기에 실린 역대 인물들의 언행이나 고사는 공령문(功令文)의 제작은 물론, 일반 문장을 작성할 때도 필수적인 전거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까닭에 역대로 이 책이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이 인쇄된 책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정도이며, 그 언해본이 1928년 세창서관(世昌書館)에서 권1∼권5까지 5책으로 나왔다.

1982년 김도련(金都鍊)이 역대의 필요한 주석만 모아 놓은 집주본(集註本)인 『집주통감절요(集註通鑑節要)』를 아세아문화사에서 냈고, 1987년에는 김충렬(金忠烈)이 이 책을 번역해서 『자치통감(資治通鑑)』 상 · 중 · 하가 나왔으며, 1996년 김도련 · 정민(鄭珉)이 이 책의 번역본 『통감절요』를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냈다. 이후 성백효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통감절요』를 완역하여 역주 『통감절요』(전9권)를 냈고, 이충구 외 시습학사 구성원들이 2016년 현재 『통감절요증손교주(通鑑節要增損校註)』와 국역본을 각각 13권까지 출판했다. 원본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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