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정호용의 문인 배원찬(裵源燦)·강시중(姜時中)과 아들 정좌영(鄭左永)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하겸진(河謙鎭)과 이현규(李玄圭)의 서문, 권말에 최명희(崔命熙)·김황(金榥)·배원찬·정좌영의 발문이 있다.
6권 3책. 석인본.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사(辭) 2수, 시 90수, 서(書) 4편, 잡저 7편, 권2에 잡저 소학도소서(小學圖小序)와 사서문답(四書問答), 권3에 잡저 삼경총의(三經總義), 권4에 서(序) 6편, 기(記) 9편, 발(跋) 2편, 명(銘) 1편, 상량문 1편, 제문 4편, 묘표 2편, 유사 1편, 권5에 죽일세계(竹逸世系), 권6에 부록으로 유사·행장·묘갈명·묘지명·덕봉서당기(德峯書堂記)·덕봉서당상량문·유집고성문(遺集告成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
문집의 거의 대부분이 경학과 관계된 내용으로 저자의 일생에 걸친 일관된 학구의 자세를 확인할 수 있다. 시 또한 서정적인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경전제영(經傳題詠)」에서는 사서삼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각기 거의 천 마디에 이르는 장편시로 되어 있다. 이는 내용면에서는 물론 분량 면에서도 일찍이 다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특이한 작품이다. 그밖에 「관물음(觀物吟)」 7수나 「이십사절음(二十四節吟)」·「유거오영(幽居五詠)」·「우십팔영(又十八詠)」 등의 연작들은 도학자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설리시(說理詩)들이다.
잡저 가운데 「경국선략(經國選略)」에서는 국가를 경영하는 요점을 11조로 나누어 종교와 학제, 세제와 관제, 화폐의 문제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 주된 내용은 유교 이념의 재무장을 주창한 것이다. 「학론(學論)」·「학설(學說)」·「성학원론(聖學原論)」·「학과(學課)」 등의 저술에서는 유가 정신에 입각한 바탕 공부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서문답」과 「삼경총의」는 문답의 형식을 빌려 경전 공부 중 의문나거나 의심스러운 부분을 해명하고 논증한 것이다.
경학에 대한 저자의 철저한 탐구와 해박한 고증은 조선 말기의 경학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