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국가무형문화유산 밀양 백중놀이의 상쇠 부문 보유자로 인정된 악사이자 밀양 지역의 상례 의식춤인 휘쟁이춤을 전승한 무용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밀양 백중놀이가 국가무형문화재(현, 무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이듬해인 1981년 기 지정 종목에 대한 보유자 추가 인정 심의가 이루어졌고, 당시 전수 조교 악사였던 김타업이 1982년 상쇠 부문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1981년 「문화재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50년 동안 밀양 백중놀이에 참가한 자로서 악사(상쇠) 예능이 우수”하다는 내용의 보유자 인정 사유가 기록되어 있다. 보본계에서 상쇠와 춤을 담당했던 이력이 고려된 것이다. 밀양 백중놀이의 문화유산 지정 초기에 보유자로 인정된 하보경과 김타업은 대를 이어 보본계 계원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김타업은 부친 김극서에게 춤을 배우고 삼촌 김치도에게 장고와 꽹과리를 사사했다. 이후 국가무형문화유산 밀양 백중놀이 오북춤 보유자 박동영에게 쇠가락, 장고가락, 병신춤을 전수했으며, 동일 종목 히줄래기춤 보유자 임순이에게 허튼춤과 병신춤을 전수했다.
한편, 김타업은 1983년 지역에 묻혀 단절 위기에 처했던 춤을 무대에 재현하는 ‘명무전’에서 휘쟁이춤을 공연한 것을 계기로 널리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올림픽 등에 대비하여 개최한 1984년 ‘무용예술큰잔치’의 ‘민속무용의 밤’에서도 휘쟁이춤을 추었다. 휘쟁이춤은 상여가 나갈 때 운구 행렬 앞에서 벽사가면을 쓰고 추었던 밀양 지역의 독특한 상례 의식춤인데, 1970년대에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 이애주에게 이 춤을 가르쳤다고 한다. 부산민속박물관에 장독대 뚜껑으로 만든 사장구가 소장되어 있는데, 이는 김타업이 1970년대에 만들어 밀양 백중놀이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권경도 구술, 『(내캉 춤이 참 좋았다)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 자서전』 33 (국립무형유산원, 2018)
- 정범태, 『한국춤 백년-한국춤의 전통을 이어온 20세기의 예인들』 1 (눈빛, 2006)
- 『밀양백중놀이』 (국립문화재연구소, 2014)
논문
-김서윤, 「휘쟁이춤에 관한 소고」 (『영남춤학회』 4-1, 영남춤학회, 2016)
기타 자료
-'꽹과리가락에 미쳐 70평생', 『중앙일보』 (1982.1.23.)
주석
-
주1
: 두레패나 농악대 따위에서, 꽹과리를 치면서 전체를 지휘하는 사람. 우리말샘
-
주2
: 다섯 명의 북재비가 원무(圓舞)를 하거나 원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추는 춤. 경상남도 밀양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백중놀이에 나온다. 우리말샘
-
주3
: 풍물놀이의 꽹과리 장단. 굿거리장단, 일채굿장단, 이채굿장단, 긴삼채장단, 자진삼채장단, 덩더꿍이장단, 오채질굿장단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
주4
: 지배 계층인 양반을 병신으로 풍자하기 위하여 병신 흉내를 내는 춤. 우리말샘
-
주5
: 가면의 하나. 귀신 얼굴을 나타내어 귀신을 막거나 쫓는 데 쓴다. 우리말샘
-
주6
: 남사당의 무리. 조선 후기부터 떠돌아다니며 노래와 춤, 풍물 연주, 갖가지 재주 부리기 따위를 일삼는 무리로서 본래는 독신 남성으로 이루어졌다가 1900년 이후에 여자가 끼게 되었다.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