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판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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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구운몽
고전산문
개념
조선시대, 전주에서 판매를 목적으로 출판한 방각본.
이칭
약칭
완판(完板)
이칭
완판본(完版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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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완판본은 조선시대, 전주에서 판매를 목적으로 출판한 방각본이다. 전주에 자리한 서계서포(西溪書鋪)·칠서방(七書房) 등 민간 방각 업소는 대량 판매를 통해 이윤을 획득하고자, 목판에 새기는 등의 방식을 활용해 방각본을 인쇄, 출판했다. 계몽을 위한 교육용 기초 서적, 가정 생활 백과 도서, 흥미 위주의 고전소설 등이 다수 간행되었으며, 특히 문학적 표현이 풍부하고 분량이 긴 완판본 한글 고전소설은 당대에 널리 읽히는 데서 나아가 후대 소설의 발달에도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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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전주에서 판매를 목적으로 출판한 방각본.
내용

조선시대 초기의 출판은 관(官)이 주도했지만, 중기로 접어들며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경제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인 서울·전주·나주·태인·안성·대구 등에서 민간 업자에 의한 간행이 이루어졌다. 목판에 새겨 인쇄하는 등의 방식이었기에 대량 생산과 판매를 통한 이윤 추구가 가능했던 것이다. 완판본은 여러 지역 가운데 특히 전주에서 출판한 방각본을 부르는 말로, 그 지역을 전라북도로 확장하여 이해하기도 한다.

전라감영이 있던 전주는 호남의 모든 물산이 모여드는 지역이었고, 이곳에서 한지 생산, 시장 유통, 교통 발달 등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완판본 출현의 배경이 조성되었다. 전주 지방은 한지의 생산지로, 수공업자 집단이 형성되어 있어 각수(刻手)를 구하기에 별 어려움이 없고, 노령산맥의 지맥을 뒤에 두고 있어 판재의 보급도 원활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전주 지역의 경우 물자가 풍성하고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한 덕분에, 소작하던 농민들은 호남평야를 배경으로 경제적 안정을 얻었고, 상업 자본의 유입에 따라 부상(富商)이 일어나기도 했다. 점차 여유를 갖추게 된 서민층 안에서 교양을 높이고,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얻으며, 오락적으로도 즐길 거리가 되는 독서에 대한 욕구가 높아진 것은 당연하다. 이와 같은 서민의 취향에 영합해 나타난 출판물이 완판방각본(完板坊刻本)이다. 사대부층을 위한 교양서나 문집류를 간행했던, 앞선 비방각본류(非坊刻本類)와 비교하면, 서민의 요구에 적절히 부응하면서, 영리를 추구하는 상업적인 출간물이었다는 의미가 있다. 비교적 이른 시기라고 할 수 있는 1725년에 전라도 나주에서 한문본 『구운몽』이 방각본으로 출판되고,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중엽 전라북도 태인 지역에서 손기조(孫基祖) · 전이채(田以采) · 박치유(朴致維) 등 아전 출신의 인사들이 방각본을 다수 펴낸 것도 이러한 배경하에 가능했다.

현재 확인된 완판본 방각 업소는 전주의 완남(完南), 완서(完西), 완북(完北), 서계서포(西溪書鋪), 다가서포(多佳書鋪), 칠서방(七書房), 양책방(梁冊坊), 완흥사서포(完興社書鋪) 등인데, 대부분 상품 교역이 활발했던 전주의 남부시장 인근 지역이다. 완판본 간기에 적힌 ‘완서’, ‘완남’ 등이 방위를 나타내는 명칭이라는 사실은 경판본 간기가 주로 지명을 사용한 것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또, 완판본 『조웅전(趙雄傳)』의 경우, 다른 지역의 방각본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녁남 각슈의 박이력, 셔봉운”처럼 판을 새긴 각수의 이름이 보이기도 한다. 완판본은 서민 취향의 도서와 양반 취향의 도서로 나뉘는데, 서민 취향의 출판은 서계 · 다가 · 양책방 등에서 담당했고, 양반 취향의 출판은 칠서방에서 담당하였다. 이들 방각본 간행 서포들은 주로 상공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완남과 완서에 자리잡고 있었다.

『간례휘찬(簡禮彙纂)』· 『사례편람(四禮便覽)』 등의 예서, 『맹자집주대전(孟子集註大全)』· 『중용언해(中庸諺解)』 등의 경서, 『동몽선습(童蒙先習)』· 『천자문(千字文)』 등의 학습서, 『통감절요(通鑑節要)』·『십구사략통고(十九史略通攷)』 등의 역사서는 경판본과 완판본에 중복되어 나타난다. 물론 종류의 다양성 면에서는 경판본이 우위에 있지만, 완판본의 경우 경부(經部)에 속하는 유학 경전이나 아동 교육용 학습서, 어학서 등이 풍부하다는 특징이 있고 이는 해당 지역 방각본의 주요 독자층과도 연결되는 문제이다. 소설은 완판본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구운몽(九雲夢)』·『삼국지(三國誌)』· 『세민황제전(世民皇帝傳)』· 『소대성전(蘇大成傳)』· 『심청전(沈淸傳)』·『월봉기(月峰記)』· 『용문전(龍門傳)』· 『이대봉전(李大鳳傳)』· 『장경전(張景傳)』· 『장풍운전(張風雲傳)』· 『적성의전(赤聖儀傳)』· 『정수경전(鄭壽景傳)』· 『조웅전』·『초한전(楚漢傳)』· 『춘향전(春香傳)』· 『토별가(兎鼈歌)』· 『홍길동전(洪吉童傳)』· 『화용도(華容道)』 등 20여 종이 있는데, 특히 1900년경에 출현하는 80여 장의 분량을 지닌 완판 방각 소설 대부분은 이미 존재하는 작품을 그대로 출판한 것이 아니라, 보다 소설적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에서 편집한 것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방각 소설 판본을 기준으로, 경판본 한 권의 분량이 대개 2030장대에 집중되어 있는 것과 달리 완판본의 분량은 비교적 고르면서 7080장대도 많다. 그 형태를 보면, 완판본은 글씨를 큼직큼직하게 써서 한 장의 적은 분량을 담아 읽기가 쉽게 만들었고, 서술 면에서 내용이나 묘사 또한 자세한 편이다. 경판본이 줄거리를 중심으로 서술하여 분량이 짧은 반면, 완판본은 풍부한 문학적 표현을 구사하여 분량이 길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 서울과 전주, 두 지역의 방각본 주요 독자층이 달랐던 영향도 있겠으나, 소설 유통 환경의 측면에서 다른 요인을 고려해 볼 여지도 있다. 또한, 경판본이 ‘궁체’의 하나인 흘림체 즉 초서체를 쓴 반면, 완판본은 민체로서 정자체 즉 해서체를 썼다. 글꼴이 이처럼 다른 이유는 주 독자층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경판본은 식자층들이 읽을 수 있도록 반초서체를, 완판본은 일반 서민도 읽고 공부할 수 있도록 정자체를 사용한 것이다. 완판본 한글 고소설 『언삼국지(諺三國志)』의 도입에 ‘가갸거겨’로 시작하는 자모음표인 반절표가 붙어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체의 측면에서도, 완판본은 구어체의 이야기 방식을 택하며 방언도 다수 사용하였으며, 판소리 사설을 거의 그대로 판각하여 판소리 율문체의 성격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부분도 있다.

간행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19세기 말로, 경판본의 전성기가 19세기 중반인 것과 비교된다. 그러나 1900년대 이후, 대량 생산을 위한 분업과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전주의 가내 수공업이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고, 가내 수공업의 하나인 목판 인쇄 출판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완판 방각본이 한창 판매되던 1900년대 초에 이미 서울에서는 활자본 신소설과 딱지본 고소설이 출판되었다. 신소설은 양지에 활자로 인쇄한 책이어서 목판에 한지를 사용하던 완판본과는 비용 면에서 차이가 컸다. 실제로 1920년대에 필경으로 인쇄한 책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1940년대~1950년대에 전주에서도 노루지에 석판으로 인쇄한 석판본이 유행하였었다. 이 석판본들은 다시 주문에 의해 생산하는 사간본의 성격을 띄었다. 완판본은 양책방(梁冊坊)이 아동 교육용 도서를 출판하는 1937년까지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이러한 시대 변화 및 기술의 발달에 따라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류탁일, 『완판 방각소설의 문헌학적 연구』(학문사, 1985)
유춘동, 『세책(貰冊)과 방각본(坊刻本) : 조선의 독서열풍과 만나다』(국립중앙도서관 도서관연구소 고전운영실, 2016)
이윤석, 『조선시대 상업출판 : 서민의 독서, 지식과 오락의 대중화』(민속원, 2016)
이태영, 『완판본 인쇄·출판의 문화사적 연구』(역락, 2021)

논문

김동욱, 「방각본에 대하여」(한국고소설연구회, 『고소설의 저작과 전파』, 아세아문화사, 1994)
김동욱, 황패강, 「한글소설 방각본(坊刻本)의 성립」(『한국고소설입문』, 개문사, 1985)
이능우, 「이야기책(고대소설) 판본지략(板本誌略)」(『고소설연구』, 이우출판사, 1980)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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