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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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태인에서 출판된 방각본.
내용 요약

태인판은 조선 후기에 전라북도 태인에서 출판된 방각본(坊刻本)이다. 태인판은 현재 13종이 전하는데, 전이채가 1794년에 2종을 간행하였으며, 전이채와 박치유가 1799년~1809년에 10종, 손기조가 1844년에 1종을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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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태인에서 출판된 방각본.
내용

태인판(泰仁板)은 조선 후기에 전라북도 태인에서 출판된 방각본(坊刻本)을 가리킨다. 태인(泰仁)은 전라북도 정읍 지역의 옛 지명으로, 조선 태종 9년(1409년)에 태산(太山)과 인의(仁義)가 합쳐서 생긴 지명이다. 이후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정읍군에 병합되어 태인면이 되었다. 조선시대 당시 태인현은 호남평야의 일부를 차지하는 곡창 지대로 당시 서적을 출판하기에 충분한 경제적, 문화적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1583년에 허봉(許篈, 1551~1588)이 속찬(續撰)한 『고사촬요(攷事撮要)』와 실물이 남아 있는 자료를 참고할 때, 조선 전기 태인에서는 관(官)과 사찰을 중심으로 11종의 서적이 간행되었다. 그 가운데 관판본(官版本)으로는 『용재집(容齋集)』 외 8종이 있으며, 사찰판본(寺刹版本)으로는 태인의 영천사(靈泉寺)에서 간행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과 청룡산사(靑龍山寺)에서 간행한 『미타예참(彌陀禮懺)』 등이 있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 작성된 각종 책판 목록에는 『효경(孝經)』과 『사요취선(史要聚選)』, 『죽음집(竹陰集)』 등 태인에서 간행된 방각본 12종을 포함하여 모두 31종의 책판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책판 목록에는 없으나 태인에서 간행되어 실물이 전하는 것으로는 『상촌집(象村集)』과 방각본인 『명심보감초(明心寶鑑抄)』의 2종이 있다.

태인에서 간행한 방각본인 태인판은 현재 13종이 전하는데, 다른 방각본에 비하여 발행자와 발행 시기가 명확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중 전이채(田以采)는 1796년에 『상설고문진보대전 후집(詳說古文眞寶大全後集)』과 『증산염락풍아(增刪濂洛風雅)』를 간행하였다. 이후 전이채는 박치유(朴致維)와 더불어 10종의 서적을 같이 발행하였는데, 그들이 발행한 서적은 다음과 같다. 먼저 1799년에 『사문유취초(事文類聚抄)』와 『사요취선(史要聚選)』을 간행하였으며, 1800년에는 『대명률시(大明律詩)』를 간행하였다. 1803년에는 『공자통기(孔子通紀)』와 『효경대의(孝經大義)』, 『상설고문진보대전 전집(詳說古文眞寶大全前集)』을 간행하였다. 1804년에는 『표점구해 공자가어(標點句解孔子家語)』를 간행하였으며, 1806년에는 『농가집성(農家集成)』과 『신간 구황촬요(新刊救荒撮要)』를 간행하였다. 그리고 발행연도를 알 수 없는 『동자습(童子習)』도 두 사람이 같이 발행하였다. 이후 1844년에는 손기조(孫基祖)가 『명심보감초(明心寶鑑抄)』를 간행하였다.

이처럼 태인판은 소설류 출판을 주로 한 경판이나 완판과는 달리 역사서, 문장, 유가서, 농서, 의서 등 그 주제가 다양하다는 특성이 있다. 이후 태인 방각본의 책판 가운데 『공자가어』, 『증산염락풍아』, 『상설고문진보대전』, 『신간구황촬요』, 『대명률시』, 『효경대의』 등은 전주와 대구로 옮겨와서 방각본으로 계속 출판되었다. 한편 『상설고문진보대전 후집』의 발문에 따르면 태인판의 발행자 전이채는 당시 아전으로, 야은(壄隱) 전녹생(田祿生, 1318~1375)의 후예였다고 한다(衙前田以采 以埜隱之遺裔). 그리고 무성서원에서 간행한 『삼강록(三綱錄)』(1887)의 효행편에는 박치유가 판서 박심문(朴審問, 1408~1456)의 후손으로 고을 사람 전이채와 더불어 『고문후집』 등 여러 서책을 목판으로 주1고 기록하였다. 이후 박치유는 장성 백양사(白羊寺)의 운문암(雲門庵)에서 『대승기신논소필삭기(大乘起信論蔬筆削記)』(1827)와 『작법귀감(作法龜鑑)』(1827)을 주2, 주3, 보현암(普賢庵)에서는 약칭 『대수구다라니경(大隨求陀羅尼)』을 서각(書刻)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 1637년에 간행된 『사서언해(四書諺解)』와 19세기에 편찬된 『각도책판목록(各道冊板目錄)』에 기록된 책 가운데 『좌전(左傳)』, 『예기(禮記)』, 『사서규벽(四書奎壁)』, 『경초(經抄)』, 『전천자(篆千字)』, 『춘추(春秋)』 등의 6종 또한 태인판 방각본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참고문헌

도록

『泰仁坊刻本』(정읍시립박물관, 2016)

단행본

이태영, 『전주의 책 완판본 백선』(전주시 · 전주문화재단, 2012)
이윤석, 『조선시대 상업출판』(민속원, 2016)

논문

김윤수, 「朴致維의 坊刻本 佛典과 白坡大師의 『筆削記』」(『한국문헌정보학회지』 25, 한국문헌정보학회, 1993)
김윤수, 「태인방각본 『상설고문진보대전』과 『사요취선』」(『서지학연구』 5 · 6, 서지학회, 1990)
류탁일, 「호남지방간행 방각본 연구(2)」(『인문논총』 23, 부산대학교, 1983)
류탁일, 「호남지방간행 방각본 연구(1)」(『인문논총』 20, 부산대학교, 1981)
류준경, 「지식의 상업유통과 소설 출판」(『고전문학연구』 34, 한국고전문학회, 2008)
류준경, 「독서층의 새로운 지평, 방각본과 신활자본」(『한문고전연구』 13, 한국한문고전학회, 2006)
송일기, 「백파 긍선과 양진거사 박치유의 만남」(『불교문화연구』 8, 한국불교문화학회, 2006)
옥영정, 「조선시대 태인지역의 고인쇄문화에 대한 일고」(『서지학보』 30, 한국서지학회, 2006)
옥영정, 「17세기 개인출판의 사서언해에 관한 고찰-1637년 간행의 사서언해를 중심으로」(『서지학연구』, 한국서지학회, 2004)
이태영, 「완판 방각본 출판의 문화사」(『열상고전연구』 31, 열상고전연구회, 2010)
주석
주1

朴致維密陽人判書審問後 … 與縣人田以采古文後集諸家書侵梓刊出

주2

글씨를 베낌. 우리말샘

주3

총서나 전집 따위를 빠진 것 없이 모두 발간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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