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판은 조선 후기에 전라남도 나주에서 출판된 방각본(坊刻本)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주판으로는 『좌전초평(左傳鈔評)』(1724), 「구운몽(九雲夢)」(1725), 『(어정)주서백선(御定朱書百選)』(1794) 등 3종의 서적이 전한다.
조선 후기에 전라남도 나주에서 간행된 방각본을 나주판(羅州板) 혹은 금성판(錦城板)이라고도 한다. 나주는 원래 백제의 발라군(發羅郡)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금산군(錦山郡) 또는 금성군(錦城郡)이라 고쳤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나주(羅州)로 고치고, 고려 성종대에 나주목(羅州牧)으로 격상되어 전주(全州) · 승주(昇州)와 더불어 전라도의 중심 지역이 되었다. 1645년(인조 23)에는 향리가 목사를 구타한 사건이 일어나 금성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54년(효종 5)에 다시 복구되었다.
한편 나주는 고려시대부터 목판 인쇄가 행해진 곳이다. 나주에서 간행된 현전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용감수경(龍龕手鏡)』(국보 제291호)이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관판본(官版本)과 사가판본(私家版本) 등이 목판본과 함께 목활자본으로도 89종이 간행되었다. 한편 나주는 현전하는 인본으로 볼 때 호남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부터 목활자 인쇄가 이루어진 곳이었다. 이는 나주가 당시 서적의 가장 중요한 원료가 되는 종이의 생산지였다는 점과 종이를 만드는 기술자인 지장(紙匠)이 많이 있었다는 것에 더하여 나주가 전라도에서 정치적 · 문화적 중심지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조선시대에 나주에서 간행된 89종의 서적 가운데 방각본은 3종으로, 각각의 내용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① 『좌전초평(左傳鈔評)』 영본(零本) 5책(전12권 6책): 『좌전초평』은 명나라의 목문희(穆文熙, 1528~1591)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뽑아서 평론을 덧붙인 책을 조선에서 간행한 것이다. 고려대 소장본에는 ‘崇禎後再度甲辰 錦城午門刊刻’이라는 간기가 있어서, 이 책이 1724년에 금성의 남문에서 새겼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② 「구운몽(九雲夢)」 상86장, 하82장: 「구운몽」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이 지은 소설이다. 이 책의 권말에는 ‘崇禎後再度乙巳 錦城午門新刊’이라는 간기가 있어서, 이 책이 1725년에 금성의 남문에서 새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구운몽』의 인본(印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③ 『(어정)주서백선(御定朱書百選)』 6권 2책 : 『주서백선』은 조선 후기 제22대 왕 정조가 주희의 편지 가운데 가장 요긴한 내용 100편을 뽑아 1794년에 간행한 서간집이다. 고려대 소장본 『주서백선』에는 ‘庚申錦城刊印’이라는 간기가 있어서, 이 책이 1800년에 금성에서 간행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위의 세 서적의 간기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금성(錦城)’은 나주의 옛 지명이다. 이에 이것들을 모두 나주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좌전초평』과 『구운몽』은 방각처가 모두 ‘금성오문(錦城午門)’으로 되어 있어, 두 서적이 같은 곳에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좌전초평』과 『구운몽』을 사간본(私刊本)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즉 이 두 책이 나주에서 간행되던 시기에는 전라 감영에서 서적을 발간하는 때이기 때문에 이 두 책의 상업적 출판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서백선』의 경우에는 내제와 간기 방식이 내각장본이나 완산감영본과 거의 같기 때문에 방각본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