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판은 조선 후기에서 20세기 초에 경상도 대구에서 출판된 방각본(坊刻本)을 말한다. 달성판은 현재 24종이 확인되는데 그중 재전당서포(在田堂書鋪)에서 22종, 광문사(廣文社)와 칠성당서포(七星堂書鋪)에서 각 1종씩 출판되었다.
달성판(達城板)은 경상도 대구에서 간행된 방각본(坊刻本)으로, 달판(達板)이라고도 한다. 달성은 대구의 옛 지명이다. 대구는 1601년(선조 34)에 경상감영이 대구부에 설치되면서 경상도의 중심지로 부상한 지역이다. 경상감영에서는 다른 감영보다 경서류(經書類), 유가류(儒家類), 사서류(史書類), 의가류(醫家類), 시문류(詩文類) 등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많이 간행하였는데, 이에 따라 대구 지역에서 방각본 출판은 다른 지역보다 늦은 20세기 초에 시작하여 1910년대에 성행하였다. 19세기 말까지 경상감영에서 간행한 서적들이 대구 지역 수요자의 다양한 서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영리적 출판이 목적인 방각본이 나오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달성판은 현재 24종이 확인된다. 재전당서포(在田堂書鋪)에서 22종, 광문사(廣文社)와 칠성당서포(七星堂書鋪)에서 각 1종씩 출판하였다. 판권지가 없는 몇 종류의 서적을 제외하면 판권지의 기록을 통해 출판 시기를 알 수가 있는데, 판권지의 기록에 따라 발행소별 출판 현황을 아래와 같이 확인할 수 있다.
재전당서포는 김기홍(金璂鴻, 18761941)이 운영하였고, 1900년대 초부터 총 22종의 방각본을 간행하였다. 그중 『동몽선습(童蒙先習)』, 『십구사략통고(十九史略通攷)』, 『통감절요(通鑑節要)』, 『보유신편(保幼新編)』(1909), 『주해 천자문(註解千字文)』, 『대학장구대전(大學章句大全)』의 6종은 간기를 통해서 1909년 이전에 간행한 서적으로 확인된다. 그리고 1913년에는 『대학언해(大學諺解)』, 『상례비요(喪禮備要)』, 『의례경전통해보 7 역학계몽(儀禮經傳通解補七易學啟蒙)』, 『전운옥편(全韻玉編)』, 『중용언해(中庸諺解)』, 『중용장구대전(中庸章句大全)』, 『부별 천자문(部別千字文)』, 『효경대의(孝經大義)』, 『효경언해(孝經諺解)』 등 9종의 서적을 간행하였으며, 1916년에는 『의례경전통해보 5 대학혹문(儀禮經傳通解補五大學或問)』, 『의례경전통해보 6 중용혹문(儀禮經傳通解補六中庸或問)』, 『주서백선(朱書百選)』 등 3종의 서적을 간행하였다. 그 뒤로도 『점필재선생집(佔畢齋先生集)』(1917), 『통학경편(通學徑編)』(1921), 『의례주소절요(儀禮注疏節要)』(1922), 『일선문사체천자문(日鮮文四體千字文)』(1934) 등을 간행하였다. 재전당서포에서는 다른 곳의 판목을 이용하여 서적을 인출한 경우가 많았다. 『중용장구대전』 ‧ 『중용언해』 ‧ 『주서백선』 ‧ 『의례경전통해보』 57은 경상감영의 영영장판(嶺營藏板)을 이용하였으며, 『점필재선생집』은 예림서원(禮林書院)의 판목을 이용하였고, 『효경대의』는 태인판을 이용하여 간행하였다. 다른 지역에 비하여 뒤늦게 방각본을 간행한 재전당서포는 유가류의 교과서적인 성격을 띠는 서적을 많이 간행한 반면 실용서의 비중이 낮고, 소설류는 방각본으로 간행하지 않았다.
광문사는 국채보상운동의 발의자로 유명한 김광제(金光濟, 1866~1920)가 운영하였고, 국한문 혼용으로 된 『유몽휘편(牖蒙彙編)』을 1906년에 간행하였다. 이는 대한제국기 학부에서 간행한 목활자본 『유몽휘편』을 다시 개간한 것인데, 이후에는 방각본을 간행하지 않고 연활자본 출판으로 변경하여 교과서 위주의 출판 사업을 영위하였다.
칠성당서포는 최선일(崔善一)이 운영하였고, 1917년에 『통감절요』를 간행하였다. 『통감절요』 외의 서적을 발행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