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원간본은 앞의 2장이 낙장(落張)인데 도산서원(陶山書院)에 소장되어 있다. 원문인 한문을 앞에 싣고 이어서 언해를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원문과 언해문의 한자에는 한자음(漢字音)이 달려 있는데, 이 한자음은 동국정운식(東國正韻式) 한자음에 따르지 않고 현실한자음(現實漢字音)에 따라 표기된 것이다. 방점(傍點)도 달려 있고 ᅀᅠ과 ᄠᅳᆷ도 사용되고 있다.
이 책은 이본(異本)이 많다. ‘만력삼십구년칠월일(萬曆三十九年七月日)’ · ‘숭정사년윤십일월일(崇禎四年閏十一月日)’의 내사기를 가진 것과, ‘세경오중춘개간전주하경룡장판(歲庚午仲春開刊全州河慶龍藏板)’ · ‘경진신간내각장판(庚辰新刊內閣藏板)’ · ‘무자신간영영장판(戊子新刊嶺營藏板)’ · ‘임술계춘영영중간(壬戌季春嶺營重刊)’ · ‘신축오월영영중간(辛丑五月嶺營重刊)’ · ‘병오중하함경감영개간(丙午仲夏咸鏡監營開刊)’의 간기를 가진 것들이 있다.
위로부터 각각 1611년(광해군 3) ·1631년(인조 9) ·1810년(순조 10) ·1820년 ·1828년 ·1862년(철종 13)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고, 함경감영본과 신축본(辛丑本)은 아직 그 간행연도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은 10행 19자본, 10행 17자본, 10행 23자본으로 구별된다.
이 책은 선조 때의 대표적 유신(儒臣)들 대부분이 참여하여 만든 경서언해의 결정(結晶)이다. 이에 비하여 이이(李珥)가 언해하여 1749년(영조 25)에 간행된 『대학율곡언해(大學栗谷諺解)』( 『사서율곡언해(四書栗谷諺解)』 중 하나)는 개인이 언해한 점에서 문체상의 차이를 보인다. 전자가 순수국어를 많이 쓴 데 비하여 후자는 한자어를 많이 쓰고 있다.
원간본에 보이는 국어학적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즉, ㅿ이 사용되었으나 대부분 ᄠᅳᆷ으로 변화하였다[사ᄅᆞᆷ이 ᅀᅡ(25b), ᄆᆞᄋᆞᆯ이(3a, 13b), ᄆᆞᄅᆡ을(13b), ᄆᆞᄅᆡ애(13a), 그으기(10a)]. ‘ㄷ’과 ‘ㅅ’은 어말자음에서 구별되어 표기되었다[ᄀᆞᆮ디(5b), 몯ᄒᆞ리로다(7b), 잇고(22a)].
자음동화현상이 표기상에 나타난다.[민ᄂᆞ니라(26a), 인ᄂᆞ니라(18a), 몬ᄂᆞ니라(22b)]. 어중의 된소리를 표기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표기가 쓰였다[ᄒᆞᇎ바애(3b), ᄒᆞᆰ거시라(15b), 삼읅거시(23b)].
도산서원본은 중세국어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국어사연구의 훌륭한 자료가 되며, 기타의 이본들은 국어사 중 음운변화를 고찰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도산서원본은 1974년 한양대학교 국학연구원에서, 그리고 1976년 대제각(大提閣)에서 각각 영인하였다. 내각장판본도 대제각에서 영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