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분권(不分卷) 1책. 경진자본(庚辰字本). 간기는 없으나, 내사기(內賜記)에 의하여 1590년(선조 23) 간행으로 추정된다. 현재 가장 완전한 상태인 일본 동경의 손케이가쿠문고(尊經閣文庫) 소장본에 ‘宣賜之記’라는 주인(朱印)과 ‘萬曆十八年(1590) 九月日內賜云云’의 내사기가 있기 때문이다.
책 끝에 1589년 6월 유성룡(柳成龍)의 ‘효경대의 발(跋)’이 있는데, 그 내용은 『효경대의』의 간행과 『효경언해』의 경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효경』의 가르침이 오랫동안 돌보아지지 않음을 탄식한 선조의 명령에 따라 『효경대의』와 함께 간행되었다고 한다. 『효경대의』는 원나라 동정(董鼎)이 주자의 『효경간오(孝經刊誤)』에 근거하여, 그 설을 정리, 개편하고 주석을 붙여 『효경』의 대의를 풀이한 것이다.
언해는 『효경대의』를 그대로 번역한 것은 아니다. 즉, 주자간오의 경(經) 1장과 전(傳) 14장의 본문만을 대상으로 하고 그 대의와 주석은 모두 생략하고 있다. 언해방식은 경과 전의 본문에 한글로 독음과 구결을 달고 이어 번역을 실었다. 그런데 그 번역도 동정의 대의에 전적으로 따르지는 않았다.
발문에서는 왕이 홍문관으로 하여금 언해하도록 하였다고 하나, 언해의 양식과 책의 판식, 경진자로 된 활자본인 점 등이 교정청(校正廳)의 사서언해와 꼭 같으므로, 이 책도 교정청의 언해사업의 일환이라 하겠다. 후대의 이본은 모두 이 원간본을 대본으로 하여 방점과 정서법 등만 약간 손질한 것들이다. 국내에 널리 유포된 후대의 이본으로써 원간본의 윤곽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효경언해』는 중종 때 최세진(崔世珍)이 『소학언해』와 함께 찬술하여 왕에게 바쳤다는 기록(中宗實錄 34年 5月 甲申條)이 있으나, 그 책은 전하지 않는다. 차자(借字)로 구결만 달린 『효경』이 전하는데, 책의 판식과 지질·구결표기로 보아서 16세기초의 책이라 생각된다. 최세진의 『효경언해』와의 관련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구결이 달린 그 책의 원전은 『효경언해』의 원전인 『효경대의』와 같지 않다. 분장(分章)만 보아도 이 책은 마지막 장이 ‘상친장(喪親章) 18’로 되었으나 『효경대의』는 경 1장과 전 14장으로 모두 15장이다.
이 책은 교정청의 『사서언해』·『소학언해』와 마찬가지로 방점과 ‘ㅿ, ᄠᅳᆷ’이 나타난다. 그러나 ‘ㅿ, ᄠᅳᆷ’은 매우 제약되어 쓰인다. ‘ㅿ’은 한자 독음표기와 조사에만 쓰이며, ‘ᄠᅳᆷ’은 받침으로만 쓰이고 초성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책은 중세어와 근대어의 교체기 자료로서 국어사연구에 도움이 된다.
또, 『효경』은 옛날부터 『천자문』·『동몽선습(童蒙先習)』 등과 같이 초학자의 교재로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 책은 유학사와 교육사 연구에도 가치가 있다. 그 밖에 원간본이 경진자로 인출되어 활자연구에도 좋은 자료로 이용된다. 일본의 손케이가쿠문고에 원간본이 전하며 국내에 다수의 이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