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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관제, 법률, 공영사관비용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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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제도
조선 말기 학무행정(學務行政)을 관장하던 중앙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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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말기 학무행정(學務行政)을 관장하던 중앙관청.
개설

1895년(고종 32) 4월에 설치되어 1910년 경술국치에 이르기까지 존속하였다. 1894년 예조의 소관업무를 계승하였던 학무아문(學務衙門)을 개칭한 것으로 오늘날의 교육부에 해당한다.

내용

관원으로는 대신 1인, 협판(協辦) 1인, 국장 2인, 참서관(參書官) 3인, 주사 11인을 정원으로 하였고, 그 뒤 1900년 참서관 1인을 증원하였다. 소속 관청으로 대신관방(大臣官房)·학무국(學務局)·편집국(編輯局) 등이 설치되었고, 관상소(觀象所)·성균관(成均館)·사범학교·중학교 등을 부속기관으로 관할하였다.

학부대신은 임금이 직접 임명하는 칙임관(勅任官)으로, 학정(學政)·교육에 관한 사무를 총괄 지휘 감독하였는데, 초대 학부대신은 박정양(朴定陽)이었다. 학부협판도 칙임관으로 임명되었고, 대신을 보좌하며 학부의 사무를 정리하고 각 국(局)의 사무를 감독하였는데, 초대 협판은 고영희(高永喜)였다.

국장은 2등 국장인 학무국장과 3등 국장인 편집국장이 있었는데, 뒤에 학무국장은 1등 국장으로 승격되었다. 1등 국장은 임금이 직접 임명하는 칙임관이나 주무대신이 임금에게 아뢰어 승낙을 받아 임명하는 주임관(奏任官)으로 임용되었고, 2등·3등 국장은 주임관으로 임용되었다.

초대 학무국장은 이응익(李應翼), 편집국장은 이경직(李庚稙)이었다. 참서관은 주무대신이 임금에게 아뢰어 승낙을 받아 임용하는 주임관이었다. 참서관은 학사(學事)의 시찰 및 학교의 검열을 담당하였는데, 초대 학부 참서관은 조병건(趙秉健)·이상재(李商在)·홍우관(洪禹觀) 등 3명이었다. 주사는 주무대신이 위임을 받아 임명하는 판임관(判任官)으로 임용되었다.

학부의 대신관방에서는 공립학교직원의 신분에 관한 사항, 교육의 검정(檢定)에 관한 사항, 학부 소관의 경비 및 제수입의 예산·결산 회계에 관한 사항, 학부 소관 관유재산(官有財産) 및 물품장부에 관한 사항 등을 관장하였다.

학무국에서는 소학교 및 학령아동의 취학에 관한 사항, 사범학교에 관한 사항, 중학교에 관한 사항, 외국어학교 및 전문학교·기술학교에 관한 사항, 외국에 파견하는 유학생에 관한 사항 등을 관장하였다. 편집국에서는 교과(敎科)·도서(圖書)의 편집·번역 및 검정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일성록(日省錄)』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
『고종시대사(高宗時代史)』 3 (국사편찬위원회,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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