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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역관 김지남이 조·청 양국간 백두산 경계의 조사 과정에 참여해 작성한 보고서. 정책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득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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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역관 김지남이 조·청 양국간 백두산 경계의 조사 과정에 참여해 작성한 보고서. 정책서.

내용

1책 204장. 필사본. 책의 원본은 1944년 11월까지 저자의 8대손인 김세목(金世穆)이 보관했으나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다. 다만 필사본만이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다.

필사본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에서 등사한 것이다. 1712년 고시언(高時彦)과 1930년 김세목의 서(序)가 있다.

조선시대 외교양식(外交樣式)을 규정한 ≪통문관지 通文館志≫의 저자 김지남의 ≪임진국경사계일기 壬辰國境査界日記≫라 칭할 수 있는데 내용 그대로 1712년 5월에 있었던 조·청 양국간의 국경사계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수역관(首譯官)으로 국경사계에 시종일관 참여한 저자가 직접 쓴 기록이므로, 당시 같이 역관으로 활약한 아들 경문(慶門)의 기록인 ≪백두산기 白頭山記≫나 임진국경사계의 우리측 접반사(接伴使)인 박권(朴權)의 ≪북정일기 北征日記≫보다 질적이나 양적인 면에서 구체적이고 풍부하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을 위시한 관찬의 문헌이 공식적인 기록만을 보여주고 있는 데 반하여, 당시 국경의 현지에서 전개된 경계 조사 활동상을 상세히 알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그곳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과 청국측의 부당하고도 일방적이며 고압적인 자세 등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 사계과정에서 청국측이 정계비(定界碑)를 세우는 데 전제가 되는 두만강의 수원(水源)이 불분명했음을 청국측이 인정한 점과 국경 도처에 그들이 정계비를 세우려 한 의도도 엿볼 수 있다. 조선 후기 북방의 국경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고 할 것이다.

참고문헌

  • - 「국경관계 문헌자료의 국가관리와 그 내용공개의 한계점에 관하여」(류영박, 『도협월보』 Vol. 15, No. 4, 19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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