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에 소장된 『공자통기(孔子通紀)』는 2책본과 3책본으로 구분된다. 각각에 수록된 간기(刊記)에 의하면 2책본은 1625년(인조 3) 장성부(長城府)에서 간행된 것이고, 3책본은 1803년(순조 3) 태인현(泰仁縣)에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8권 3책의 활자본이다. 앞부분에 유서(劉瑞)가 지은 「공자통기서(孔子通紀序)」‚ 반부가 지은 「공자통기총해(孔子通紀總解)」‚ 사탁(謝鐸)이 지은 「독공자통기서(讀孔子通紀序)」와 「공자통기범례(孔子通紀凡例)」가 수록되었다.
반부는 명나라 절강(浙江) 상우(上虞) 출신으로, 자는 공수(孔修), 호는 남산(南山)이다. 1487년 진사(進士)에 급제 후 관직에 진출했는데,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시행을 위해 노력했다. 남경병부주사(南京兵部主事)와 광동제학부사(廣東提學副使), 태상소경(太常少卿) 등을 역임했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했다.
반부는 서문에서 공자 사후 후대의 학자들이 제가(諸家)의 견강부회하는 논의들을 뒤섞어 놓아 공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어렵게 되었고, 또한 공자의 위대한 도가 육경(六經)에 흩어져 있어 초학자들이 요령을 얻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편찬의 이유로 제시했다. 본문은 「전기(前紀)」의 상·하‚ 「정기(正紀)」의 상·중·하‚ 「후기(後紀)」의 상·중지일(中之一)·중지이(中之二)·하 등의 9편으로 구성되었다.
「전기 상」에서는 공자가 선왕(先王)의 도통(道統)을 계승하였음을 서술했고‚ 「전기 하」에서는 공자가 선성(先聖)의 후예임을 입증하기 위해 조상의 계보를 서술했다. 「정기 상」에서는 공자의 출생에서 50세까지의 행적을 편년(編年)으로 서술했고‚ 「정기 중」에서는 51세에서 60세까지의 행적을 편년으로 서술했으며‚ 「정기 하」에서는 61세에서 73세로 죽을 때까지의 행적을 편년으로 서술했다.
「후기 상」에서는 「공자역대봉시(孔子歷代封諡)」‚ 「공자역대포숭전장(孔子歷代褒崇典章)」‚ 「공자전대가봉조어(孔子前代加封詔語)」‚ 「공자성화초중수묘비(孔子成化初重修廟碑)」 등에 대해 서술했다. 「후기 중」에서는 공자의 제자들과 후대의 여러 학자들에 대해 소개했는데‚ 그 중에서 「후기 중지일」에는 안회(顔回)·증삼(曾參)·자사(子思)·맹자(孟子)를 ‘공문아성(孔門亞聖)’으로, 민자건(閔子騫)·염백우(冉伯牛)·염옹(冉雍)·단목사(端木賜)를 ‘성문대현(聖門大賢)’으로 분류하는 등 각각의 범주로 분류했는데, 그러한 범주에는 ‘성문현자(聖門賢者)’‚ ‘성문고제(聖門高弟)’ 등이 있다.
「후기 중지이」에는 주돈이(周敦頤)·정호(程顥)·정이(程頤)·장재(張載)·주희(朱熹)를 ‘성문대현’으로 분류했는데‚ 소옹(邵雍)을 별도의 항목으로 서술하며 역시 ‘성문대현’으로 범주화하는 등 송나라와 원나라 학자들을 서술했다. 「후기 하」에서는 공자의 직계 후손들을 서술한 「공자역세종자은전(孔子歷世宗子恩典)」과 공자 후손들 중 관직에서 현달한 인물을 서술한 「공자현관자손은전(孔子賢官子孫恩典)」으로 구성되었다.
『공자통기』는 공자 문하의 인물들을 총 집대성한 것으로 특히 동중서(董仲舒)와 한유(韓愈)를 ‘성문대유(聖門大儒)’로 높이고, 주돈이·정호·정이·장재·주희를 ‘성문대현’으로 높인 것 등에서 주자학 중심의 도통관(道統觀)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홍치(弘治)·가정(嘉靖) 연간 명나라 주자학의 동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1625년과 1803년에 조선에서 간행되었던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문인들에게도 지속적인 관심을 받았던 책이라는 점에서 조선시대 사상사 연구의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