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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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록
삼강록
문헌
조선시대. 충 · 효 · 열로 현창할 만한 사람들을 가려서 간행 배포한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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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삼강록』은 조선시대 충·효·열로 현창할 만한 사람들을 가려서 간행 배포한 문헌이다. 『괴산삼강록』, 『호남삼강록』과 같이 특정 지역에서 별도로 작성되거나 개인이 작성한 『삼강록』도 있는데, 이 책들도 관에서 간행했던 『삼강록』과 관련된 문헌으로 추정된다.

목차
정의
조선시대. 충 · 효 · 열로 현창할 만한 사람들을 가려서 간행 배포한 문헌.
내용

『삼강록(三綱錄)』은 국가에서 일정 기간을 두고 정기적으로 충신(忠臣),효자(孝子), 열녀(烈女)로 현창할 만한 사람들 가려서 그들의 사적(史籍)을 기록하여 편찬한 책이다. 지역에서 별도로 작성되거나 개인이 작성한 『삼강록』도 있는데, 이 책들도 관(官)에서 간행했던 『삼강록』과 관련된 문헌으로 추정된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10권, 명종조 고사본말의 기록을 보면, 명종이 예조에 교서를 내려 8도의 관찰사가 관할하는 고을에 효자나 열녀가 있으면 탐문하여 보고하라고 하고, 이를 바탕으로 당대의 삼강록을 출판하여 중앙과 지방에 배부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청음집(淸陰集)』에 수록된 증(贈) 순창부원군(順昌府院君) 행 의주목사(行義州牧使) 김공 여물(金公汝岉)의 신도비명에는 계사년[1593, 선조 26]에 의관(衣冠)을 거두어 안산(安山)의 모리에 있는 모향(某向)의 산등성이에 새로 묏자리를 잡아 장사지냈고 조정에서는 정려(旌閭)를 세워 표창하였고, 이 사실은 『삼강록』의 충신전(忠臣傳)에 실려 있다는 기록이 있다.

영조대에도 기존의 『삼강록』을 보완한 『속삼강록』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도 찾을 수 있다.[『영조실록』 61권, 영조 21년(1745년) 5월 15일)]

규장각에는 정조대 간행된 『삼강록』이 소장되어 있다. 1776년에서 1783년 사이의 기록으로, 매 식년마다 각 도에서 올린 충신, 효자, 열녀 를 예조에 예조에 보고하도록 하고, 예조에서 다시 왕에게 아뢰어 증직(贈職) · 급복(給復) 및 상전(賞典)을 내렸는데, 이 책은 이를 뒷받침하는 사적(事蹟)을 편록(編錄)한 것이다.

그 외에도 삼강록 관련 서적들을 조사해보면, 『괴산삼강록』, 『호남삼강록』과 같이 특정 지역에서 간행된 것도 있고, 개인에 의해 간행된 삼강록도 보인다. 하지만 이것들도 국가에서 간행한 삼강록과 유관한 문헌인 것으로 추정된다.

『삼강록』의 간행 의도는 세종대에 간행된 『삼강행실도』『이륜행실도』, 『오륜행실도』와 같으며, 간행의 법제적 근거는 『경국대전』 「예전」 장권조에서 삼강오륜으로 사표가 될 자를 포상한다는 규정이다. 이를 위해서 일정한 기간[대체로 식년(式年)]으로 각 지역의 모범이 되는 인물의 사례를 올리게 하고 기록하여 포상하였는데, 그 때 작성된 것이 『삼강록』의 기본 자료가 되어, 일정한 시기마다 이를 수정보완하여 『삼강록』이 간행 · 배포되었다. 현존하는 여러 『삼강록』들은 그런 작업과 관련하여 간행되어 남겨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원전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청음집(淸陰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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