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박문수는 조선 후기 호조판서, 병조판서, 경상도관찰사,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일찍이 동궁(東宮)의 요속(僚屬)이 된 인연으로 영조의 지우(知遇)를 입어 탕평 정권에 참여하여 직간(直諫)하는 신하로 이름을 얻었다.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공이 있었다. 소론의 당론을 견지하며 이광좌를 사표(師表)로 삼아 지론이 시종 일관 변하지 않았다. 노론을 견제하다가 곤경에 처하였으며, 결국 을해옥사 때 역모자가 진술한 초사(招辭)에 이름이 나와 문초를 당하는 수모를 겪고 정계를 은퇴한 후 사망하였다.
정의
조선 후기 영남별견어사, 호조판서, 병조판서, 평안도관찰사, 경상도관찰사,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1727년(영조 3) 정미환국으로 다시 등용되어 그해 10월 1차 영남별견어사(嶺南別遣御史)로 나가 흉년 중 구휼과 탐관오리에 대한 징계 등을 아뢰었다. 이듬해인 1728년(영조 4) 3월에 2차 영남별견어사로 복명하여 자인현감, 대구판관, 울산부사, 용인현감 등을 모두 파직시켰다.
1728년 무신난으로 불리는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등 4개 도를 관할하는 사로도순문사(四路都巡問使) 오명항(吳命恒)의 종사관으로 임명되어 난을 토벌하였다. 이어 민심 수습을 위한 영남안무사(嶺南安撫使)로 나아갔다가 바로 경상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1730년 경연 참찬관(參贊官)과 대사성 · 대사간 · 도승지를 역임하였으며, 1731년(영조 7) 영남 감진어사(嶺南監賑御史)로 나가 기민(饑民) 구제에 힘썼다. 1732년 선혜청 당상(宣惠廳堂上)이 되었고, 경연 특진관을 역임하였다.
1734년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하고, 예조참판으로 재직 중에 진주부사(陳奏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사행을 다녀온 뒤 호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739년 함경도관찰사와 1741년 어영대장(御營大將)을 역임하였다. 함경도관찰사 시절 흉년이 들자 함경도 감영의 은으로 경상도의 곡식을 바꾸어 진휼(賑恤)과 무곡(貿穀)에 힘썼다.
1743년 경기도관찰사와 1744년 황해도 수군절도사, 1745년 어영대장을 역임하였다. 1750년(영조26) 어영대장 · 수어사(守禦使)를 역임한 뒤, 균역법(均役法) 제정 논의 때 호전론(戶錢論)을 펴다가 뜻이 맞지 않아 관동영남균세사(關東嶺南均稅使)로 나아가 어염선세(魚鹽船稅)를 획정하였다.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 ·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 세손사부(世孫師傅) 등을 지냈다.
1755년(영조 31) 나주괘서사건(羅州掛書事件)으로 시작된 을해옥사(乙亥獄事)가 일어났가. 역모자가 진술한 초사(招辭)에 박문수의 이름이 나와 문초를 겪었지만, 영조는 이를 무고(誣告)로 보았다. 박문수는 죄인으로 자처하며 문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이듬해 병으로 사망하였다.
『박충헌공연보(朴忠憲公年譜)』가 전하며, 묘는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은지리 산 1-1에 있으며,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이다. 글씨로는 안성의 『오명항토적송공비(吳命恒討賊頌功碑)』가 전한다. 네 차례에 걸쳐 어사로 파견되었던 행적이 각색되며 암행어사 박문수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학문과 저술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경종실록(景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영조실록(英祖實錄)』
단행본
- 김백철, 『박문수, 18세기 탕평관료의 이상과 현실』(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4)
논문
- 심재우, 「역사 속의 박문수와 암행어사로의 형상화」(『역사와 실학』 41, 역사실학회, 201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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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조선 시대에,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때 실시하던 임시 과거 시험. 태종 1년(1401)에 처음 실시하였으며 생진과의 초시와 복시, 문과의 초시ㆍ복시ㆍ전시 5단계로 나누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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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조선 시대에, 문과 과거 시험의 본시험인 복시에서 보던, 경서(經書)의 강을 받던 시험. 주로 사서삼경의 해당 문장을 외도록 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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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조선 시대에, 과거 합격자를 성적에 따라 나누던 세 등급 가운데 셋째 등급. 문과(文科)에서는 23명, 무과(武科)에서는 20명을 뽑아 정구품의 품계를 주었으며, 성균관ㆍ승문원ㆍ교서관의 임시직인 권지(權知)에 임명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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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조선 시대 승정원(承政院)에 속한 정7품 벼슬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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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죄를 지은 자의 벼슬과 품계를 빼앗고 벼슬아치의 명부에서 그 이름을 지우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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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사신 행차’를 줄여 이르던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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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흉년을 당하여 가난한 백성을 도와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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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이익을 보려고 곡식을 몰아서 사들임. 또는 그 곡식.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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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고치기 어려운 폐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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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문서나 글을 정리하여 바로잡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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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나주괘서의 변’을 달리 이르는 말. 을해년에 일어난 데서 유래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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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조선 시대에, 죄인이 범죄 사실을 진술하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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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죄나 잘못을 따져 묻거나 심문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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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사실이 아닌 일을 거짓으로 꾸미어 해당 기관에 고소하거나 고발하는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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