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일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 지평, 정언, 동래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수언(壽彦)
  • 허주와(虛舟窩)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풍(淸風)
  • 사망 연도1742년(영조 1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지평|정언|동래부사
  • 주요 저서허주와유고(虛舟窩遺稿)
  • 출생 연도1694년(숙종 20)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김정자 (연세대 전임연구원)
  • 최종수정 2026년 01월 12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김석일은 조선 후기 지평, 정언, 동래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소론계 인물이었다. 정시 문과에서 탕평(蕩平)을 공격하는 말을 써서 영조가 급제 명단에서 제외하는 발거(拔去)하기를 명했다가 중지한 일이 있었다. 사헌부 지평에 임명되어 탐오한 관리와 무신 수령 등의 불법을 논계하였다. 정언에 임명되어서도 영조의 잘못된 처분을 상소하였고, 말이 매우 절실하고 정직하였다. 동래부사에 임명되었다. 저서로는 『허주와유고(虛舟窩遺稿)』가 있다.

정의

조선 후기 지평, 정언, 동래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수언(壽彦), 호는 허주와(虛舟窩)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흥진(金興進), 할아버지는 김준(金埈), 아버지는 승지 김두명(金斗明)이며, 어머니는 이무(李茂)의 딸이다. 처부(妻父)는 조명흥(趙命興)이다. 형제는 김석번(金錫蕃)과 김석우(金錫禹)이다. 아버지 김두명이 윤증(尹拯)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소론계 인물이다. 처부인 조명흥은 장현광(張顯光)과 윤근수(尹根壽)의 문인인 포저(浦渚) 조익(趙翼)의 후손이다.

주요 활동

1715년(숙종 41) 진사가 되고, 1731년(영조 7)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김석일은 과거 답안지에 탕평(蕩平)을 공격하는 말을 쓰고, “진가(眞假)를 구별하지 않고 상하가 서로 몽롱(朦朧)하다.”라고 말하여, 영조가 급제 명단에서 제외하라고 명하였다가 곧 중지하였다.

1734년(영조 10) 사헌부 지평(持平)에 임명되었다. 이듬해인 1735년(영조 11) 탐오한 관리와 무신 수령의 불법을 논계하였는데, 도리어 헌납(獻納) 서명형(徐命珩)이 그를 파직하자고 청하였다. 이때 정언(正言) 김도(金䆃)가 서명형의 행동을 논척하며 파직을 청한 일이 있었다.

1739년(영조 15) 정언에 임명되었다. 이때 영조가 안상휘(安相徽)를 멀리 귀양보내고, 김유(金濰) 등을 천극(栫棘)하며, 서명균(徐命均)을 파직(罷職)하고, 이종성(李宗城)을 삭직(削職)한 일이 잘못한 일이라고 상소하였다. 말이 매우 절실하고 정직하였으나, 영조는 엄한 비답을 내리고 김석일을 파직시켰다. 좌의정 김재로(金在魯)가 김석일이 능히 곧은 말을 한 것이었다고 매우 칭찬하였으나, 영조는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1741년(영조 17) 동래부사에 임명되었고,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이듬해 망미루(望美樓)를 건립하였다. 망미루는 1972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어 있다.

학문과 저술

저서에는 시 · 제문 · 소 · 기 등을 수록한 시문집으로 6권 2책의 『허주와유고(虛舟窩遺稿)』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로 있다.

참고문헌

  • 원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 『영조실록(英祖實錄)』

주석

  • 주1

    : 진사 급제 : 『갑오식년사마방목(甲午式年司馬榜目)』(성균관대학교 존경각[B13KB-0007])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싸움, 시비, 논쟁 따위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공평함. 우리말샘

  • 주4

    : 고려 말기ㆍ조선 전기에, 사헌부에 속한 종오품 벼슬.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전중시어사를 고친 것으로, 잡단으로 고쳤다가 조선 태종 원년(1401)에 다시 이 이름으로 고쳤다. 우리말샘

  • 주5

    : 신하가 임금의 잘못을 따져 아룀. 우리말샘

  • 주6

    : 가시울타리를 친다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이 옷이 없어서 밖에 나가지 못함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 주7

    : 죄를 지은 자의 벼슬과 품계를 빼앗고 벼슬아치의 명부에서 그 이름을 지우던 일. 우리말샘

  • 주8

    : 임금에게 아뢰는 글에 임금이 말미에 적는 가부의 대답. 우리말샘

  • 주9

    : 조선 시대에 둔, 정삼품 문관의 품계. 고종 2년(1865)부터 종친과 의빈(儀賓)의 품계로도 썼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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