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미루

  • 예술·체육
  • 유적
  • 조선 후기
  • 시도문화유산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있는 조선후기 동래부사 김석일이 건립한 누정. 누각·조경건축물.
시도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윤국병 (전 고려대학교, 임학)
  • 최종수정 2024년 06월 04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있는 조선후기 동래부사 김석일이 건립한 누정. 누각·조경건축물.

내용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팔작지붕건물. 1972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742년(영조 18) 동래부사 김석일(金錫一)이 창건했다고 하며, 당시 동래도호부(東萊都護府)의 문루(門樓)로 지은 것이다.

높은 주초석 위에 놓인 건물로 공포(栱包)는 2익공(二翼工)이고 마루는 귀틀마루이다. 누각 위에는 큰 북이 달려 있어서 인정(人定)과 파루(罷漏)를 알렸다고 한다. 원래 동래도호부터였던 현 동래군청 앞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현위치로 옮겼다.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관아(官衙)의 문루로서, 정면에는 ‘東萊都護府’라 쓴 편액(扁額)이 걸려 있고, 후면에는 ‘望美樓’라 쓰여진 편액이 걸려 있다.

옛날 한양으로부터 부임해 온 어느 동래부사가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하여 이 누각을 망미루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오고 있으며, 1919년 동래의 3·1운동은 이 누각 위에서의 만세삼창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 『부산시지』 하(부산시사편찬위원회, 197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