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익형(盧益亨)이 1907년 4월 경성 남부 상동 68번지 12호에서 창설하였다. 한때 봉래동으로 옮겼다가 1925년 이후종로 2가 82번지에 정착하였다.
창업주는 당시 자본금 200원으로 “한국에도 신문화가 수입되기 시작하는데, 책전 같은 것도 필요할 것 같아서 시작하였다.”고 설립동기를 밝히면서 출판과 판매를 함께 시작하였다.
서관의 특색은 내외도서 1만 종의 서적과 문방구 각종을 구비하고 신속 수응하였고, 박리다매주의와 신용 본위로 고객을 대하였다. 1920년대는 「짠발쟌 이야기」·「하므레트」·「카르멘」·「나나」·「무쇠탈」·「첫사랑」·「부평초」 등의 번역물·번안물을 많이 출판하였다.
한편, 1920년 중반 이후 한국 소설도 출간하여 염상섭(廉想涉)의 「견우화 牽牛花」, 현진건(玄鎭健)의 「지새는 안개」, 이상협(李相協)의 「정부원 貞婦怨」, 이광수(李光洙)의 「젊은 꿈」·「마의태자」 등이 출판되었다.
1930년대에 이광수의 「사랑」이 성공하고 『현대걸작장편소설전집』 전 10권, 『신선역사소설전집』 전 5권이 문학전집으로 성공하였다. 그리고 박문문고(博文文庫) 전 18권을 발행하여 고금동서문화의 최고작을 망라함으로써 양서보국의 기치를 내세웠다. 또한, 최초의 수필전문지인 『박문(博文)』을 통권 제23권까지 발행하였다.
1940년대는 물질통제를 받으면서 이광수의 문단생활 30년기념 출판으로 『춘원시가집(春園詩歌集)』을 출간하였고, 양주동(梁柱東)의 『조선고가연구(朝鮮古歌硏究)』, 방정환(方定煥)의 『소파전집(小波全集)』 등 출판을 통하여 겨레의 정신을 고취하였다.
박문서관은 일제강점기하의 대표적인 출판사의 하나로 민족정신의 고취와 국민계몽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