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조(李海朝)가 개작한 신소설. 판소리 명창 박기홍(朴起弘)의 <춘향가> 사설을 바탕으로 개작한 작품이다. 1912년 1월부터 3월까지 ≪매일신보 每日申報≫에 연재한 것을, 같은 해에 보급서관(普及書館)에서 단행본으로 출판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13년에 ‘선한문춘향전’과 ‘증수춘향전(增修春香傳)’, 1914년에 ‘증상연예옥중가인(增像演藝獄中佳人)’·‘연정옥중화(演訂獄中花)’, 1915년에 ‘특별무쌍춘향전’, 1916년에 ‘특정신간옥중가화(特正新刊獄中佳花)’, 1917년에 ‘언문춘향전’, 1918년에 ‘옥중가화’, 1920년에 ‘옥중화춘향전’, 1922년에 고대소설 ‘옥중가인’, 1925년에 ‘만고열녀옥중화’ 등의 이름으로 거의 동일하게 여러 출판사에서 거듭 출판되었다.
이는 <옥중화>계통의 <춘향전>이 개화기 춘향전의 중심을 이루었음과, 그 시대의 <옥중화>에 대한 인기도를 보여준다. 20세기 초엽의 <춘향전> 이본의 주축이 된 <옥중화>는 서두가 “절대가인 생겨날 제 강산정기 타서 난다. 전라산하 약하계에 서시가 종출하고……호남좌도 남원부는 동으로 지리산 서으로 적성강 산수정신 어리어서 춘향이가 생겨 있다.”로 시작되어 선행한 별춘향전계통과는 판이한 문장을 나타낸다.
이처럼 <옥중화>는 신소설시대의 서술 형식에 힘입어 서두에서부터 산천의 정기(精氣)와 인물 출현을 관련지어, 지리산의 정기를 타고난 춘향정신을 작품의 주요한 복선으로 삼는 새로운 서술 기법을 갖추고 있다. 또, 그 시대에 유행한 개화의식은 <장부사업가 丈夫事業歌>를 부르는 농민들의 입을 통하여, 풍속 개량에 모범이 되고 인재를 양성하고 경제대가가 됨이 장부의 도리임을 주장하고 있다.
종결 부분에서 어사의 장모가 된 월매의 요청을 받고, 암행어사가 변 부사를 용서해주어 회개하도록 하는 점은 선행한 <춘향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옥중화>의 개성이다. 그러나 변 부사에 대한 이러한 변모는 <춘향전>의 정통적인 흐름에서 너무 벗어났기 때문에, 그 이후의 큰 계통인 <대춘향전> 등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