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의 아전(衙前)이며 판소리 비평가, 후원자, 이론가, 작가였던 신재효(申在孝, 1812~1884)의 작품이다. 가사체의 사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간 이 작품을 단가나 가사로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설의 판소리적 특성을 바탕으로 '단형 판소리'로 보고 있다. 판소리 사설의 문학적 관습이 잘 드러나고, 전형적인 판소리적 어투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대화체 형식과 까마귀(남성)와 두꺼비(여성)라는 등장인물이 중심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근거로 ‘분창’ 형식을 실험한 최초의 창작 판소리 사설로 규정되기도 한다.
「오섬가」는 까마귀(金烏)와 두꺼비(玉蟾)가 마주 앉아 사랑과 슬픔에 대한 여러 사건을 노래하며, 품평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섬가」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고왕금래 기이한 일도 많고 허망한 말도 많거니와, 이 일과 이 말은 기이할 뿐 아니라 허망한 말 아니엇다. 대저 가마귀와 두터비와 문답 수작한단 말이 황당한 말이기로, 속 모르고 듯난 이난 허망타 하러니와 속 알고 듯거드면 다른 사설 듯건난냐. 이 가마귀 성은 금가 저 두터비 성은 옥가, 음을 붙여 보면 가마귀는 금오요 두터비난 옥섬인듸 금오는 사나이요 옥섬은 게집이라……. 허다한 말 다 바리고 사람의 칠정 중의 사랑 애자 슬플 애자 제일 난감한 것이라…….”
대화의 내용은 사랑과 슬픔에 대한 중국의 고사들을 나열하고, 우리나라의 「춘향가」, 「배비장타령」, 「강릉 매화 타령」 등의 인물들을 예로 드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헌원씨가 죽은 후에 계속되는 전쟁으로 부부 간의 생이사별하던 애절한 심정, 제순(帝舜)이 죽은 뒤 피눈물을 흘리면서 남편을 못 잊어 하는 아황(娥皇) · 여영(女英)의 슬픔, 초패왕(楚覇王)이 패전으로 우 미인(虞美人)과 최후의 이별하는 아픔, 한태조(漢太祖)의 부인 여 태후와 후궁 척 부인(戚夫人)과의 사랑의 삼각적 갈등과 비극 속에 드러나는 표면적 애정(哀情)과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골계적 희정(喜情)을 노래하였다. 그리고 조선국 남원부의 춘향과 이 도령의 「사랑가」와 「이별가」, 정 비장과 제주 기생의 사랑과 이별의 노래, 강릉 책방 골 생원을 매화(梅花)가 속이려고 백주에 산 사람을 거짓되이 죽었다고 홀딱 벗겨 앞세우고 상여 뒤를 따라가며 벌이는 굿, 끝으로 미혹에 빠진 남자들에게 여색에서 오는 오도를 경계한 것이 이 노래의 대강이다. 중국의 신화에 바탕을 둔 전개는 「오섬가」의 서사와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이는 중국과 우리나라를 대비하는 효과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오섬가」에서 까마귀와 두꺼비를 해와 달의 정령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의 신화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서술자는 까마귀와 두꺼비를 선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이 사설 지은 것이 비유한 말이로다. 가마귀라 하는 이난 태양지정 해님이요, 두터비라 하는 이는 태음지정 달님이라. 일월이 조림하사 천지개벽 이후 사를 못 보신 게 없었구나. 세상 사람 깨우랴고 칠정 중에 이 두 가지 특별히 기록하사 허실을 분각하고 포렴이 분명하니, 남녀 간 무론하고 이 사설 들으신 후에 각기 알아 하옵시요. 무궁 사설 그만저만."이라고 하여 남녀 간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까마귀와 두꺼비를 의도적으로 선택하였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오섬가」는 신재효가 판소리적 관습에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판소리로서의 실험을 보여 준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