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효(申在孝)는 「춘향가(春香歌)」를 남창과 동창으로 나누어 개작하였다. 「춘향가」를 상이한 시각으로 정리하여 남겼다는 점에서 신재효의 작가 의식을 다중적으로 살펴볼 수 있고, 당대 불리던 판소리의 여러 모습 등을 추정할 수 있어서 이본적 가치가 크다.
신재효의 「춘향가」는 남창과 동창 외에도 여창이 따로 있었다고 하나 남아 있는 자료가 없다. 가람본에는 동창을 '여창'이라고도 한다는 기록이 있어, 여창의 존재 유무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신재효가 「춘향가」의 판을 이렇게 분화해 놓은 것은 소리꾼과 소리판의 공연 조건 등을 고려하여 다양하고 새로운 판소리를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재효 판소리 사설은 비합리적이고 비사실적인 내용을 합리적으로 개작하였다는 평을 받는다. 남창은 "절대가인 생길 적에 강산정기 타고난다."라는 사설로 시작하여 「춘향가」 태몽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신재효 사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설은 김창환(金昌煥)으로 이어졌고, 정광수(丁珖秀)의 창본에도 수용되었다. 김소희(金素姬)도 서두 부분의 사설을 수용하였다. 춘향의 옥중 고난을 그리고 있는 사설은 임방울(林芳蔚)의 「쑥대머리」로 수용되었다.
남창의 전체 줄거리는 다른 「춘향가」와 비슷하나 세부 내용은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남창에서는 춘향을 대비속신(代婢贖身)한 양반의 서녀로 그려 놓아서 기생으로 설정되어 있는 동창과 대비된다. 이에 걸맞게 남창에서는 춘향을 조신하고 품위 있는 모습으로 그려내었다. 또한 남창의 결말에서 춘향이 정렬부인으로 승격하지 못하는 점도 다른 판소리와 비교되는 특징이다. 춘향이 정실부인이 되었다는 언급 없이 이 어사와 백년해로를 하는 것으로만 그려 내고 있다. 한편 춘향의 옥중 꿈은 천장전을 가서 직녀성군을 만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직녀성군은 춘향에게 전생에 지은 죄를 알려 주며 선약으로 병이 낫도록 한다. 다른 판소리의 옥중 꿈에서 황릉묘를 가는 것과 대조적이다.
「남창춘향가」에서 보여 준 신재효의 작가 의식은 여타 이본이 보여 주는 춘향의 열녀로서의 이미지보다는 예정된 고난을 극복하고 보상을 받는 당위적인 결말로 이어지고 있어서, 사회적 항거의 의미를 축소시킨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남창춘향가」에는 이 어사와 동헌에서의 극적인 해후도 없기 때문에 계층에 대한 차별성은 공고히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신재효는 부정부패나 탐관오리 등에 대한 사회 고발을 통해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즉, 양반의 위계질서를 엄격하게 그리면서도 비판적 사회 인식과 민중의 고통을 보여 주고 있어서, 신재효의 신분적 중층성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재효의 「남창춘향가」 사설은 후대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된다. 김창환 방식의 「춘향가」는 물론, 동초 김연수의 「춘향가」에서도 신재효의 사설의 영향이 확인된다.
이 작품에는 등장인물의 성격 형상화에 일정한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양반 사대부 집안의 점잖은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춘향전(春香傳)」이나 「춘향가」에서 희극적인 인물로 부각되는 방자나 월매조차도 이 작품에서는 점잖고 사려가 깊은 인물로 전환된다.
이와 더불어 판소리 사설의 구비 문학적 성격을 기록 문학적 성격으로 전환시켰던 신재효 판소리 사설의 전반적인 성격이 이 작품에서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신재효가 「동창춘향가」와 짝이 되게 이 작품을 분화시킨 것은 판소리 창자를 중심으로 소리판이 성립된다는 점을 고려하여, 소리판의 다양한 분화를 시도한 결과였으리라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