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1961. 전라남도 광산 출생(현재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아버지의 소망에 따라 14세 때 박재현(朴載賢) 문하에서 「춘향가」와 「흥보가」를 배웠고, 뒤에 유성준(劉成俊)으로부터 「수궁가」·「적벽가」를 배웠다.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태어났고 성량도 풍부하였다.
오랫동안 수련한 그는 25세 때 상경하여 송만갑(宋萬甲)의 소개로 첫무대에서 「춘향가」가운데 ‘쑥대머리’를 불러 크게 인기를 얻었다. 이것을 계기로 그의 창작으로 전하는 ‘쑥대머리’를 비롯한 많은 음반을 내었다.
특히 일본에서 취입한 ‘쑥대머리’는 우리나라·일본·만주 등지에서 100여만 장이나 팔렸다한다. 그 뒤 음반취입과 판소리 공연에만 힘을 쏟았고 창극운동에는 가담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를 판소리 전통을 최후까지 고수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
한편으로는 서편제 소리의 최후 보루라고도 하고 있다.
판소리 다섯 마당을 다 잘하였지만 특히 「춘향가」·「수궁가」·「적벽가」를 잘하였다. 1960년에 원각사(圓覺社)에서 「수궁가」 발표회를 가진 것을 비롯하여 몇 가지 공연을 가졌다.
이때 녹음하여 둔 테이프를 복사하여 취입한 음반인 「수궁가」와 「적벽가」가 전한다. 일제 때에 그는 이화중선(李花仲仙)과 더불어 가장 인기있는 명창이었으나 판소리의 사설에는 치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많은 음반 가운데 「춘향가」에서 ‘쑥대머리’, 「수궁가」에서 ‘토끼와 자라’ 대목은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그의 소리는 박귀희(朴貴姬)·한애순(韓愛順)·신평일(申平日)·김용준(金龍準)·성우향(成又香) 등이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