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조 때 송만재(宋晩載)가 지은 「관우희(觀優戱)」에는 판소리를 부르기 전 영산(靈山)을 불렀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 내용이 오늘날의 단가 「진국명산(鎭國名山)」과 같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옛날에는 단가를 영산이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순조 때의 명창 송흥록(宋興祿)은 「천봉만학가(千峰萬壑歌)」를 잘 불렀고, 철종 때의 명창 정춘풍(鄭春風)은 「소상팔경(瀟湘八景)」을 지었으며, 고종 때의 명창 정정렬(丁貞烈)은 「적벽부(赤壁賦)」에 곡조를 붙여 불렀다. 근래의 명창으로는 강태홍(姜太弘)과 김초향(金楚香)이 「운담풍경(雲淡風輕)」의 곡조를 지었다고 한다.
단가는 「진국명산」을 비롯하여 「장부한(丈夫恨)」·「사창화림풍(紗窓花林風)」·「소상팔경」·「만고강산(萬古江山)」·「호남가(湖南歌)」·「강상풍월(江上風月)」·「죽장망혜(竹杖芒鞋)」·「편시춘(片時春)」·「고고천변(皐皐天邊)」·「운담풍경」 등 50여 종이 넘으나, 오늘날 10여 종이 불려질 뿐 나머지는 거의 불리지 않는다.
사설의 내용은 흔히 중국 고사나 명승고적 및 인생 감회를 담고 있다. 장단은 대부분 중모리장단으로 되어 있고, 오직 「사창화림풍」이 엇중모리장단으로 되어 있으며, 「고고천변」은 중중모리장단으로 되어 있다. 조(調)는 대부분 평조(平調)인데, 요즈음 송만갑(宋萬甲)은 「백구가(白鷗歌)」에 경드름을 섞어 불렀고, 임방울(林芳蔚)은 「고고천변」을 계면조(界面調)로 불렀다.
또한, 부침새를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요즈음에는 부침새를 여러 가지 쓴 것도 있다. 따라서 부침새를 별로 쓰지 않고 평조로 부르는 곡이 고형(古形)이며, 부침새를 구사하는 곡과 계면조로 된 곡은 뒤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어려운 판소리를 갑자기 부르면 목이 잘 트이지 않을 염려가 있어 먼저 부르는 곡인만큼, 보통빠르기 장단에 평조와 평이한 선율로 되어 목을 서서히 풀어 나간다. 그러므로 음악은 화평하고 담담한 느낌을 준다. →판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