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이조판서, 도총관, 대제학,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11년 유운(柳雲) · 이행(李荇) 등과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했고, 직제학(直提學) · 부제학 · 대사간 등을 거쳤으며 일시 경주부윤으로 나갔다. 1519년 기묘사화로 조광조(趙光祖) 일파가 몰락한 뒤 발탁되어 이조판서에 올랐다.
아들 김희(金禧)가 효혜공주(孝惠公主)와 혼인해 중종의 부마(駙馬)가 되자, 이를 계기로 권력을 남용하다가 1524년 영의정 남곤(南袞) · 심정(沈貞), 대사간 이항 등의 탄핵을 받고 경기도 풍덕(豊德)에 유배되었다.
남곤이 죽자 1530년 유배 중이면서도 대사헌 김근사(金謹思)와 대사간 권예(權輗)를 움직여 심정의 탄핵에 성공하고, 이듬해 유배에서 풀려나 다시 서용되어 도총관(都摠管) · 예조판서 · 대제학을 역임하였다. 그 뒤 이조판서를 거쳐 1534년 우의정이 되었으며, 이듬해 좌의정에 올랐다.
1531년 다시 임용된 이후부터 동궁(東宮: 인종)의 보호를 구실로 실권을 장악해 허항(許沆) · 채무택(蔡無擇) · 황사우(黃士佑) 등과 함께 정적(政敵)이나 뜻에 맞지 않는 자를 축출하는 옥사(獄事)를 여러 차례 일으켰다.
정광필(鄭光弼) · 이언적(李彦迪) · 나세찬(羅世纘) · 이행(李荇) · 최명창(崔命昌) · 박소(朴紹) 등 많은 인물들이 이들에 의해 유배 또는 사사되었으며, 경빈 박씨(敬嬪朴氏)와 복성군(福城君)이미(李嵋) 등 종친도 죽음을 당했다. 또한 왕실의 외척인 윤원로(尹元老) · 윤원형(尹元衡)도 실각당하였다.
1537년 중종의 제2계비인 문정왕후(文定王后)의 폐위를 기도하다가 발각되어 중종의 밀령을 받은 윤안인(尹安仁)과 대사헌 양연(梁淵)에 의해 체포되어 유배되었다가 곧이어 사사되었다.
허항 · 채무택과 함께 정유삼흉(丁酉三凶)으로 일컬어진다. 저서로는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 『희락당고(希樂堂稿)』 등이 있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 『희락당고(希樂堂稿)』
- 『대동기문(大東奇聞)』
- 『대도야승(大東野乘)』
- 『조야집요(朝野輯要)』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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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사마시 급제 : 『홍치14년신유2월○일생원진사방(弘治十四年辛酉二月○日生員進士榜)』(사마방목(司馬榜目)[보물 제14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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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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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김안로 저술 : 『희락당고(希樂堂稿)』 (국립중앙도서관 3646-14-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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