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원(昌原). 1342년(충혜왕 복위 3) 밀직사지신사(密直司知申事)로 조적(曺頔)의 무리를 제거하고 왕을 시종한 공으로 1등공신이 되었다. 1346년 충목왕이 8세로 즉위하자 경일시독제(更日侍讀制)를 채용하여 46명의 서연관(書筵官)을 임명할 때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 참여하였다.
1349년 충정왕이 즉위하자 도첨의참리(都僉議參理)에 임명되었고, 이어 8월에 회산군(檜山君)에 봉하여졌다. 1356년(공민왕 5) 5월에 기철(奇轍)을 제거할 때 밀직으로서 누설되기 전에 빨리 제거할 것을 건의하여 찬성사가 되었고, 7월에 관제를 복구할 때 문하평장사에 임명되었다.
1358년에는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렀으나 다음해 정월 파직되었다. 문장에도 뛰어나 『용재총화』에 사(辭)가 전하고 있다. 시호는 공희(恭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