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참의, 대사간,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의주부윤에 이르러서는 변방의 병영을 다시 정비하여 방비를 굳건히 하였으며, 그 뒤 우부승지·병조참지·예조참의를 거쳐, 1739년 대사간이 되었다.
그 뒤 안동부사로 부임하여 유학을 크게 진흥시켰고, 1749년 호조참판에 올라 동지 겸 사은부사(冬至兼謝恩副使)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해서기보균세사(海西畿輔均稅使)가 되어 몸소 배를 타고 다니며 어염(魚鹽)과 배를 살피면서 세금을 고르게 부과하여 두 지방의 세입(稅入)이 줄어들어 위로부터 질책을 들었으나 원망하는 백성이 없었다. 그 뒤 형조참판에 전임하여 부총관을 겸임하였다.
1751년 함경도에 큰 흉년이 들자 조정에서 청렴하고 신중한 그를 관찰사로 추천하여 병마절도사·수군절도사·순찰사를 겸하게 하였다.
함경도에 부임한 그는 경상도의 곡식을 실어다 빈민을 구제하고, 농기구와 소[牛] 등을 나누어주며 농경을 장려하여 북방의 백성들이 떠도는 것을 막고, 이도(吏道)를 쇄신하다가 임지에서 죽었다. 북방의 잦은 기근과 유망민(流亡民) 때문에 고심하던 영조는 그를 함경도관찰사로 임명하고는 시름을 놓았다 한다.
참고문헌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강한집(江漢集)』
- 『한국계행보(韓國系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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