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2.7m. 고려 말, 조선 초에 활동하였던 무학대사 자초(自超, 1327∼1405)의 묘탑(墓塔)이다. 회암사 터의 북쪽 능선 위에 있는데, 뒤쪽에는 스승인 나옹(懶翁) 혜근(惠勤, 1320∼1376)의 승탑과 함께 나옹의 스승인 지공(指空, ?∼1363)의 승탑도 있고, 왼쪽 능선 아래에는 현재의 회암사가 있다.
승탑은 8장의 길고 큰 돌을 2단으로 쌓아 만든 높고 널찍한 단면 8각의 석단(石壇) 위에서 있다. 석단의 각 모서리에는 꼭대기부분을 보주(寶珠) 모양으로 장식한 네모난 돌기둥이 세워져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길고 넓은 돌을 끼워 넣었다. 길고 넓은 돌 위에는 보주 모양의 기둥을 연결하여 난간을 둘렀는데, 이것은 승탑을 보호하는 장치이자 장엄으로 보인다.
바닥돌은 단면이 8각인 하나의 돌로, 각 면에는 굵은 선으로 구름 무늬를 돋을새김하였는데, 특히 각 모서리의 구름무늬는 유난히 크게 조각되었다. 받침돌은 아래받침돌, 가운데받침돌, 윗받침돌로 구성되었다. 아래받침돌은 2장의 꽃잎이 아래로 향해 있는 복련(覆蓮)의 연꽃무늬 16개가 귀꽃과 함께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는 연화대(蓮花臺)이다. 가운데받침돌은 마치 단면 8각의 북을 옆으로 엎어 놓은 듯한 모습으로, 가운데부분이 약간 부른 각 면에는 네 모서리가 안쪽으로 접힌 네모꼴의 안상(眼象)이 조각되었는데, 안상 가운데에는 각각 모양이 다른 꽃 무늬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윗받침돌은 밑면에 3단의 각진 받침이 새겨져 있고, 그 위에는 꽃잎이 위로 솟은 앙련(仰蓮)의 연꽃 무늬 16개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앙련의 모습과 연꽃잎 안의 장식은 아래받침돌의 복련과 같지만 귀꽃은 없다. 앙련 위에는 단면 8각의 높직한 받침이 있는데, 옆면에는 각 면마다 네모꼴 구획을 마련하고서 덩굴풀무늬[唐草文]를 돋을새김해놓았다. 다만, 무늬가 굵은 선으로 조각되어 섬세함과 유려함은 떨어진다.
단면이 둥근 몸돌은 굄이 없이 윗면이 평평하게 처리된 윗받침돌 위에 올려져 있다. 옆면에는 구름무늬와 함께 구름 속을 날고 있는 용무늬가 가득 조각되어 있다. 특히 용의 머리와 몸통, 비늘 등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생동감을 주며, 구름무늬 역시 뒤엉킨 몸통 사이에 빈틈없이 조각되어 역동감을 한층 더하고 있다.
단면 8각의 지붕돌은 밑면에 서까래가 뻗어 있고, 대들보 위에 올리는 짧은 기둥인 두공(枓栱) 모양이 새겨져 있지만 퇴화된 양식이다. 추녀는 평박(平薄)한 편으로, 각 모서리는 약간 치켜 올라갔고, 전각(轉角)에는 약간의 반전(反轉)이 있어 둔중함이 조금 감소되었다. 비교적 급경사를 이루는 낙수면에는 각 모서리마다 전각까지 우동(隅棟)을 굵게 표현하였는데, 전각을 만나기 전에 특이하게 용 머리를 하나씩 돋을새김해 두었다.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는 지붕돌 꼭대기부분에 구멍을 뚫고서 보주만을 올린 간소화된 모습으로, 아랫부분에는 2단의 둥근 받침이 새겨져 있다.
이 승탑은 조선 초기의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승탑으로,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는 무학대사비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1407년(태종 7)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