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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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에서 연주된 관악기. 횡취(橫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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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취(橫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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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에서 연주된 관악기. 횡취(橫吹).
내용

일명 횡취(橫吹)라고도 한다. 고구려의 횡적은 집안(集安) 오회분 5호묘 등과 같은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발견되고, 또 『수서(隋書)』·『북사(北史)』같은 중국 문헌에 의하면 횡취로 기록되었다. 고구려의 횡취는 오현(五絃)·금(琴)·쟁(箏)·소(簫)·고(鼓)·피리[篳篥]와 함께 연주되었는데, 이 관악기는 젓대처럼 가로로 잡고 부는 횡적의 일종일 것으로 추정된다.

장천(長川) 제1호 고분의 벽화에 의하면, 고구려의 횡적 또는 횡취는 피리 및 오현비파(五絃琵琶)와 함께 5세기 무렵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을 거쳐 고구려에 수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에서 구다라부에, 곧 백제적(百濟笛)으로 알려진 백제의 횡적은 백제악(百濟樂)의 중요한 관악기의 하나로 연주되었다.

『고사유원(古事類苑)』의 기록에 의하면, 백제적을 연주한 아악사(雅樂師) 오다(大田麻呂)가 824년 당악(唐樂) 횡적의 선생으로 전임되었다고 하므로, 백제적이 824년 이전부터 백제악의 중요한 관악기 가운데 하나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의 이러한 횡적은 삼국통일 이후 통일신라 사회에 수용됨으로써, 남북국시대(南北國時代) 통일신라 향악기(鄕樂器)의 뼈대를 이룬 삼죽(三竹)의 뿌리가 되었다. 통일신라의 삼죽은 고려왕조에 모두 전승되어 왕립음악기관인 대악서(大樂署)와 관현방(管絃房)에서 중요한 향악기로 연주되었고, 또한 궁중 밖에서는 횡적이 고려사회의 승려와 문사(文士)들에 의해서도 애용되었다.

고려 횡적의 전통은 조선시대에도 거의 그대로 전승되어 왕립음악기관인 장악원(掌樂院)에서 중요한 향악기의 뼈대를 이루었다. 조선 전기 궁중 밖에서는 선비들이 거문고(玄琴)와 함께 횡적을 애용했으며, 선비 이외에 악공(樂工)·여기(女妓)·관현맹인(管絃盲人) 등도 횡적을 연주하였다. 조선시대 횡적 중에서 현재까지 널리 연주되고 있는 관악기로는 젓대로 알려진 대금과 당적(唐笛)이 있다.

참고문헌

『수서(隋書)』
『북사(北史)』
『고려음악사연구(高麗音樂史硏究)』(송방송, 일지사, 1988)
『한국고대음악사연구(韓國古代音樂史硏究)』(송방송, 일지사, 1985)
『한국음악통사(韓國音樂通史)』(송방송, 일조각, 1984)
『한국음악논총(韓國音樂論叢)』(이혜구, 수문당, 1976)
『한국음악연구(韓國音樂硏究)』(이혜구, 국민음악연구회, 1957)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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