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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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 시대 군사의 시재(試才), 무예의 훈련 및 병서(兵書)의 습독(習讀)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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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시대 군사의 시재(試才), 무예의 훈련 및 병서(兵書)의 습독(習讀)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내용

고려 시대에는 군사의 훈련이나 취재(取才 : 재주를 시험해 사람을 뽑는 것)를 맡았던 별도의 기관은 보이지 않으며 병조·선군(選軍) 또는 2군 6위 자체에서 이러한 기능을 담당했던 것 같다. 그러나 1390년(공양왕 2)에 처음으로 무과가 설치되면서 무반에 취재 및 훈련 체계의 필요성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1392년(태조 1) 7월에 조선이 건국되어 새 관제를 반포할 때 훈련관(訓鍊觀)이 설치되었다.

이 때의 규정에 따르면 훈련관은 무예를 훈련하고, 병서와 전진(戰陣)을 교습시키는 일을 맡았다. 관원으로는 사(使, 정3품) 1인, 군자좨주(軍諮祭酒, 종3품) 2인, 사마(司馬, 종4품) 4인, 사직(司直, 종5품) 4인, 부사직(副司直, 종6품) 4인, 참군(參軍, 종7품) 4인, 녹사(錄事, 정8품) 6인이었다. 그 가운데 사직과 부사직을 제외하고는 다른 관직과 겸직하였다.

그 뒤 훈련관은 1394년에 중군군후소(中軍軍候所)를 흡수했고, 1405년(태종 5)에는 병조의 속아문(屬衙門)으로 되고, 계속해 정비되어 마침내 1466년(세조 12)에는 훈련원으로 개칭하면서 제도적 기틀을 정돈하기에 이르렀다.

≪경국대전≫의 규정에 따르면, 지사(知事, 정2품) 1인은 타관(他官)이 겸했고, 도정(都正, 정3품당상관) 2인 가운데 1인도 타관이 겸했으며, 정(正, 정3품당하관) 1인, 부정(副正, 종3품) 2인, 첨정(僉正, 종4품) 2인, 판관(判官, 종5품) 2인, 주부(主簿, 종6품) 2인, 참군(參軍, 정7품) 2인, 봉사(奉事, 종8품) 2인이었다. 그 밖에 습독관(習讀官)이 30인 있었는데, 이들은 병요(兵要)·무경칠서(武經七書)·통감(通鑑)·장감(將鑑)·박의(博議)·진법(陣法)·병장설(兵將說)을 습독하고, 사어(射御)를 익혔다. 관원은 모두 무관으로 임용되었는데, 특히 정은 당상관으로 승진될 수 있었다.

훈련원의 임무는 크게 시취(試取)와 연무(鍊武) 두 가지였다. 시취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무과(武科)를 주관하는 일로, 초시(初試)는 한성에서 원시(院試)를 관장해 70인을, 각 도에서 병마절도사 책임 아래 120인을 뽑았다. 이들 190인을 병조와 훈련원에서 함께 주관해 복시(覆試)를 통해 28인을 선발하고, 이들은 최종적으로 전시(殿試)를 보아 등수가 정해졌다. 그런데 매년 봄·가을에 실시되는 도시(都試)의 경우, 중앙에서는 병조와 훈련원의 당상관이 시취의 일을 담당하였다. 그 밖에 내금위(內禁衛)·별시위(別侍衛)·친군위(親軍衛) 등의 시취도 훈련원이 주관하고 있었다.

한편, 연무는 병서들을 습독하는 걸 포함해 훈련원이 군사력의 유지·발전을 위해 주력하는 일이었는데, 중앙에서 매달 두 번씩 실시되는 습진(習陣)에 훈련원이 간여했으며, 특히 봄과 가을에 실시되는 겸사복(兼司僕)·내금위·충의위·족친위·장용위(壯勇衛)의 병기 검열은 훈련원에서 주관하였다. 그 밖에 구체적인 전술의 연구와 교습도 이루어졌다.

훈련원은 조선 후기인 1795년(정조 19)에 첨정 1인, 판관 2인, 주부 8인이 증설되고, 첨정·판관·주부 가운데 1인을 문관으로 임명하도록 하면서 약간의 변모를 하였다. 그 뒤 1884년(고종 21)에는 중국 우창칭(吳長慶)의 공적을 추모하는 오장무공사(吳壯武公祠)가 훈련원에 세워진 바 있으며, 1907년에는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의 체결에 따라 폐지되고 군대 해산이 이루어짐으로써 없어지게 되었는데, 이 때 일본에 항거하는 항일운동이 전개되었던 일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태조실록(太祖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고종실록(高宗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속대전(續大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대전회통(大典會通)』
『조선초기의 군사제도와 정치』(민현구, 한국연구원,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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