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책. 필사본. ‘흠영원본(欽英元本)’ · ‘흠영계징(欽英稽徵)’ · ‘흠영계징원본(欽英稽徵元本)’ · ‘흠영집기(欽英集記)’ · ‘흠영기일(欽英記日)’로도 불린다.
유만주 사후에 2년간에 걸쳐 벗 임로(任魯)가 주관하여 난초(亂草) 상태의 초고를 정리하였다. 전(全) 25책으로 편찬되었다. 그 중에 제 25책에 해당하는 『흠영별부(欽英別部)』는 결락된 것으로 보인다.
현전 유일본으로 보이는 규장각본은 정사(淨寫)한 후 다시 교열을 본 듯하다. 고친 흔적이 도처에 있다. 초고에 있었던 청비(靑批)와 홍비(紅批)를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흠영』은 1775년(영조 51)부터 1787년(정조 11)까지 13년간의 기록을 연 · 월 · 일의 순서로 배열하였다. 한 해의 일기를 일부(一部)로 삼아 모두 13부로 구성해 놓았다. 각 부 앞에는 저자의 서문이 있다. 하루하루의 기록은 맨 처음에 그 날의 날씨를 적었다. 이어서 그 날 있었던 일을 기사내용에 따라 동그라미 표시로 구분하며 적어 나가고 있다.
내용은 대단히 광범위하다. 자신이 창작한 시문, 그날의 행적과 소회(所懷), 동시대 문장가의 글, 독서한 책의 내용 중에 흥미로운 구절을 초록(抄錄)한 것, 경향(京鄕)의 동향, 집안 대소사(大小事), 조보(朝報)의 내용을 초록한 것 등의 자신의 주변은 물론 나라 안팎의 모든 일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곳곳에 정통 고문은 물론 소설 · 소품문(小品文)에 관한 문장론이 풍부하게 개진되어 있다. 허목(許穆) · 김창협(金昌協) · 황경원(黃景源) · 박지원(朴趾源) 등의 선배 문인들과 당대 문인들의 글쓰기에 대한 저자 자신의 솔직한 소견이 담겨 있다. 유교 윤리의 지나친 구속으로부터 탈피라는 관점에서 소설 창작을 옹호하고 있는 점 등은 문학연구자들의 주목을 요한다.
『흠영』은 일기문이다. 따라서 저자 유만주가 생존한 당시의 생활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18세기 사회 · 경제 · 문화사 연구에 기초자료를 제공한다. 그리고 문인 화가들의 화론(畫論)을 초록(抄錄)하고 있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서화(書畫)에 대한 논의도 풍부하여 예술사 연구에 많은 참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