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 흥국사에 있는 근대의 괘불. 1902년 작. 이 괘불은 봉은사괘불(奉恩寺掛佛, 1886년)과 같은 삼존도(三尊圖) 형식으로, 경기도 내의 남양주 흥국사괘불(興國寺掛佛, 1858년)·불암사괘불(佛巖寺掛佛, 1895년)과도 유사하다.
도상은 순·고종 시대에 유행한 삼존불의 간략하고 소형화된 구도이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 협시보살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아난(阿難)·가섭(迎葉)과 문수동자(文殊童子)·보현동자(普賢童子)가 배치되었다.
본존의 형태는 키형의 광배(光背 :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를 지고 있다. 원만한 얼굴에 큼직한 중앙 계주와 긴 두 귀, 늘여진 팔 등 비현실적이다.
본존과는 달리 보살상·제자상·동자상은 비교적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본존불 앞으로 선 협시들은 어색한 원근법을 표현하고 있다. 화면을 꽉 차게 표시한 점이나 협시들의 얼굴에 살이 빠진 듯한 볼, 가는 눈썹, 아래로 내려다보는 반개된 작은 눈과 꽉 다문 작은 입 등은 20세기 초기의 흐름을 보여 준다.
보살들의 화려한 보관에 정병(淨甁)과 화불(化佛)이 비교적 큼직하게 묘사하여 대세지보살과 관음보살의 존상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본존과 좌우 협시보살의 크기가 거의 동등하게 묘사하여 삼존불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신체에 비해 유난히 큰 본존불의 손과 하체가 짧게 묘사된 비현실적인 비례를 감추기 위해서 화려한 장식을 하고 있다. 옷 끝단을 장식하는 국화·모란·연꽃의 변형된 도안적인 꽃무늬가 화려하게 묘사되었다.
색채의 사용은 원색적인 적색과 녹색, 삼존불의 황색의 얼굴, 두 존자의 밝은 육색, 두 동자의 주홍색의 조화는 비교적 서방 극락정토의 화려함을 나타내려고 했다. 그러나 군청색의 남용으로 화면 전체는 어둡고 경직되어 보인다.
괘불은 영산회상도·미륵보살도·비로자나불도 등이 주로 조성되며, 아미타불화는 극히 드문 편이다. 19세기를 중심으로 경기도 일대의 사찰에 소장된 불화는 아미타불화가 많이 제작되는데, 국내·외 정세가 혼란했던 시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미산흥국사만일회비기 漢美山興國寺萬日會碑記>라는 비문과 <봉은본말사지 奉恩本末寺誌>의 사적기에 의하면 영조가 1707년에 숙빈 최씨의 묘인 소녕원(昭寧園)에 가다가 이곳에 행차하여 약사전의 편액을 써 주었다고 한다. 또한 고종 15년(1878년)에 주실 완해(籌室 玩海)가 내탕금(內帑金)으로 괘불탱화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 흥국사 괘불의 화기에 의하면, 완해성순(玩海 聖淳)으로 보아 왕실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왕실에서는 혼란했던 시기에 왕실의 안녕을 빌고 극락정토에 태어나기를 기원하고자 아미타불을 조성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고종의 성수만세(聖壽萬歲)를 기원하고, 황태자(純宗)과 황태자비의 성수(聖壽) 그리고 순비(淳妃) 엄씨(嚴氏)와 영친왕(英親王)의 안녕을 빌고 있다.
서울의 봉원사괘불(1901년)은 흥국사괘불보다 1년 전에 조성된 같은 초본(草本)을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화기에 의하면 황성(皇城) 서서(西署)황화방(皇華坊) 경운궁(德壽宮)에 거주하는 순빈 저하(純嬪邸下)가 시주하여 친정 부모인 영월 엄씨의 명복을 빌고 있다.
순빈 엄씨는 봉원사괘불의 조성은 친정부모를 위해, 흥국사괘불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괘불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괘불 조성 화사는 봉원사 괘불은 한봉당(漢峰堂)응작(應作), 추산당(秋山堂)천성(天性), 덕월당(德月堂)응륜(應崙), 금화당(錦華堂)기□(機□), 명응당(明應堂)환감(幻鑑), 보암당(普庵堂)긍법(肯法), 범화당(梵華堂)윤익(潤益), 청암당(淸庵堂)운조(雲照) 등이다.
흥국사는 경반당(慶般堂)응석(應釋), 허곡당(虛谷堂)와순(瓦淳), 보암당긍법이다. 긍법은 양쪽 사찰의 괘불 조성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봉원사괘불보다 흥국사괘불은 당대 최고의 화사들만을 참여시킨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