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과천현감을 지낸 조태징을 배향한 남산사의 부속건물로 1770년(영조 46)에 세웠다. 대청에 걸려있는 「흥학당기」에 의하면 이 지역에서 터를 잡고 있던 풍양조씨 문중이 학문을 강론하고 이를 게을리하지 않고 일으킨다는 뜻으로 건물 이름을 지었다 한다.
ㄷ자형으로 지은 이 건물은 중앙 4칸에 아주 넓은 우물마루를 깐 대청을 드려 문중 유생들의 강학장소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 우측으로는 2칸의 안방과 1칸의 웃방이 있는데 안방 옆으로는 작은 방들이 하나씩 달려 있으며, 이 안방 앞에는 규모가 매우 큰 2칸의 부엌이 있다.
대청의 좌측으로는 건넌방이 있고, 꺾이어 다시 작은 부엌이 달려 있다. 외벌대의 자연석으로 쌓은 낮은 기단 위에는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덤벙주초석에 네모기둥을 세웠는데, 기둥머리에는 장식을 하지 않았다.
가구는 1고주 5량집으로, 종량 위에는 뜬창방이 결구되어 있는 제형대공(梯形臺工)을 세워 종도리를 받았고,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을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