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강화학 최후의 광경』, 『사천강단』, 『예루살렘 입성기』 등을 저술한 학자. 역사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연세대학교에서 도서관 관장, 『연희춘추』 초대 편집인, 문과대학 학장, 동방학연구소 소장과 그 후신인 국학연구원 원장을 지내다가 1980년 정년퇴임 후 명예교수로 있었다. 1999년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한국 불교사와 양명학에 업적을 쌓은 역사학자로서, 학계에서 널리 쓰이는 '강화학(파)'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이 용어는 연희전문을 다닐 때 위당 정인보를 만나 양명학의 적통을 이어받은 그가 조선 양명학의 본거지가 강화도였다는 데 착안해 명명한 것이다.
한국 양명학의 명맥을 밝힌 『강화학 최후의 광경』, 불교 선종사(禪宗史)를 비판한 『사천강단』, 예수의 생애를 재해석한 『예루살렘 입성기』 등 세 권의 저서를 남겼다. 각각 유교, 불교, 기독교의 뿌리를 비판한 책이다. 그의 강화학 연구는 이념보다 실질을 존중하는 양명학의 정신을 학문 전반으로 확장시키려는 시도였다. 일연선사의 인각사 비문을 고증하는 과정에서 일본에 전해지는 『중편조동오위(重編曹洞五位)』가 일연의 저서임을 밝혀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편 서지학에 관심을 두고 문헌정보학을 발전시키는 데도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강화학 최후의 광경』, (민영규, 우반, 1994)
- 『사천강단: 서여문재 기이』, (민영규, 우반, 1994)
- 『예루살렘 입성기』(민영규, 연세대학교 출판부,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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