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구역의 동쪽은 사동구역, 남쪽은 동대원구역, 서쪽은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중구역과 모란봉구역, 북쪽은 대성구역을 접하고 있다. 면적은 14.2㎢이고, 인구는 20만 7,081명(2008년)이다.
대동강구역(大同江區域)은 1960년에 사동구역의 문수동(紋繡洞)·북수동(北繡洞) 등 5개 동과 선교구역의 문신동(紋新洞) 일부를 병합하여 구역이 신설되면서 형성된 지명이다. 이는 구역을 흐르는 대동강에서 유래하였는데, 대동(大同)은 『예기(禮記)』 예운편(禮運篇)에 나오는 말로 큰 도(道)가 행해지면 전체 사회가 공정해져서 현명한 사람과 능력 있는 사람이 지도자로 뽑히게 되며 신의가 존중되고 친목이 두터워지는 이상사회를 의미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평양)에는 “『고려사』 악지(樂志)에, “주무왕(周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고 8조의 가르침을 베풀어 예속(禮俗)을 일으켰으므로 조야(朝野)가 무사하고 백성들이 기뻐하여 대동강을 황하(黃河)에 비하여 노래를 지어 그 임금을 송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기자(箕子)가 동래(東來)하면서 우리나라에 선정(善政)을 베풀어 사람들이 대동강(大同江)으로 부른 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역의 대부분은 넓은 평야를 이루었는데 지금은 시가지로 바뀌었다. 북부는 대동강(大同江)을 따라 의암산(衣岩山)과 아비산(阿枇山, 타비산) 등의 잔구가 나타나고, 남동부는 송령봉(松嶺峯)·시령봉(時嶺峯)·뱀산 등의 낮은 구릉이 전개된다. 하천은 대동강이 구역의 북부를 동쪽에서 흘러와 북서류하다가 다시 남쪽으로 휘감으면서 곡류하는데, 대취도(大醉島) 등의 하중도를 형성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평양부(平壤府) 예안부(禮安部)의 대동강방(大同江坊)과 추울미방(秋鬱美坊)에 속하였다. 1896년에 평양부 대동강면(大同江面)과 추을미면(秋乙美面)이 되었다가 1914년에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대동강면과 추을미면으로 분리되었다. 1930년대에 다시 평양부에 편입되었으며, 1946년에 평양특별시 북구(北區)로 개편되었다.
1952년에 북구역(北區域)으로 개칭되었다가 1959년에 북구역을 사동구역(寺洞區域)으로 변경하였다. 1960년에 사동구역에서 동문동(東紋洞)·문수동(紋繡洞)·북수동(北繡洞)·의암동(衣岩洞)·탑제동(塔濟洞)과 선교구역의 문신동(紋新洞) 일부를 병합하여 5개 동을 관할하는 대동강구역(大同江區域)이 신설되었다. 이후 여러 번의 행정구역 조정을 통해 일부 동이 이관되거나 신설·폐지되었다.
2002년 기준으로 행정구역은 25동(대동강동, 동문1·2동, 능라1·2동, 문수1·2·3동, 문흥1·2동, 북수동, 사곡1·2동, 소룡1·2동, 옥류1·2·3동, 의암동, 청류1·2·3동, 답제1·2·3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역의 소재지는 동문1동이다.
구역에는 대동강변에 대동강초대소와 85호관저를 비롯하여 많은 대학과 병원이 산재해 있다. 주요 대학은 대학거리를 중심으로 인민경제대학·평양기계대학·평양건설건재대학·평양외과대학·평양음악무용대학 등이 위치하며, 고려의학종합병원·평양산원·평양친선병원 등의 종합병원이 분포한다. 상업시설로는 대성백화점·과학자여관(科學者旅館)·동평양대극장·청년중앙회관 등이 있으며, 문수유희장·사동공원(寺洞公園)·산원공원(産院公園)·평양보링관 등의 휴식 공간이 있다.
교통은 대중교통으로 문수∼낙랑간 궤도전차와 시내 주요 구역을 연결하는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주요 다리로는 능라교(綾羅橋, 1070m)와 청류교(淸流橋, 450m)가 있는데, 능라교는 능라도를 가로질러 상업·편의시설이 즐비한 문수거리와 모란봉구역을 연결하며, 청류교는 문수거리와 5월1일경기장을 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