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가 왕실의 덕을 세우고 후대 왕을 권면하기 위하여 1771년에 저술한 어제(御製). 교훈서.
개설
편찬/발간 경위
간행본의 건수는 명확하지 않으나 본문 말미의 기록에 따르면, 내입 5건과 세손궁 1건 외에 중앙의 6조를 비롯한 주요 관아 및 중신, 8도의 도신(道臣)과 양도(兩都) 유수 등에게 옥새를 찍어 각 1건씩 하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목판은 사국(史局)에 보관되었다.
서지적 사항
표지 다음 면에 ‘운관간인 사고장판(芸館刊印 史庫藏板)’의 기록이 있어 이 책이 운관(교서관)에서 간행되었고, 그 목판은 사고(史庫)에 보관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문에 앞서 영조의 친필 ‘덕류석대 경수천억(德流石代 慶垂千億)’이라는 대자(大字)의 유묵이 있다. 또 본문 말미에 간행의 경위와 반사, 장판의 보관에 관한 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본문 다음에는 ‘봉교교정(奉敎校正)’이라는 제하에 교정에 참여한 인원 김상복, 김치인(金致仁)‚ 김양택(金陽澤)‚ 한익(韓翼)‚ 김상철(金尙喆)‚ 이창의(李昌誼)‚ 채제공(蔡濟恭)‚ 서명응(徐命膺)‚ 조엄(趙曮)‚ 심이지(沈頤之)‚ 이흥종(李興宗)‚ 이곤(李坤)‚ 조재준(趙載俊) 등 13인의 관함(官啣)과 이름이 열서되어 있다. 규장각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동일 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내용
또한 이 글은 영조가 김육(金堉, 1580~1658)이 지은 『종덕신편(種德新編)』 의 종덕(種德)의 의미에 깊이 감동하여 지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후직과 문왕의 관계처럼 당시의 조선왕조가 태조를 비롯한 여러 선왕의 덕에 의해 이룩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영조는 이 글을 통해 자신의 소회를 다소 강개한 어조로 기술하고, 아울러 오늘의 군신은 과연 동심동덕(同心同德)하고 있는가를 반문하면서 신하는 물론 세손 정조에게도 덕행에 힘쓸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일성록(日省錄)』
- 『영조어제훈서(英祖御製訓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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