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주해천자문』은 개원사에서 홍성원의 글씨를 판하로 하여 1752년에 간행한 교재이다. 목판본으로 불분권 1책이다. 4글자씩 125행으로 각 행 사이에 작은 행을 하나 더 만들어 어구의 주해를 기록하였다. 각 글자의 음훈을 2-3개까지 달아 한자의 의미를 정밀하고 체계적으로 표현하였다. 이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석봉천자문』과 일치한다. 현재 1804년 간행된 중간본과 함께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에서 1973년 『동양학총서』로 영인되었다. 이 책은 국가에서 간행된 것이 아닌데도 규범적이고 공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정의
개원사에서 홍성원의 글씨를 판하(板下)로 하여 1752년에 간행한 교재. 한자교본.
개설
편찬/발간 경위
서지적 사항
권말(卷末)의 간기(刊記)는 “숭정백이십오년임신주해우귀계정사 상호군남양홍성원서 남한개원사(崇禎百二十五年壬申註解于龜谿精舍 上護軍南陽洪聖源書 南漢開元寺)”로 되어 있어‚ 홍성원이 1752년에 귀계정사(龜谿精舍)에서 이 책을 주해한 것을 알 수 있다.
서울 광통방(廣通坊)에서 홍태운(洪泰運)의 글씨를 판하로 하여 1804년에 간행된 중간본(重刊本)과 함께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규장각 소장 「일사 고 418.3-J936」과 같은 판본이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에서 『석봉천자문』과 함께 1973년 『동양학총서』로 영인된 바 있다.
내용
유의 관계에 있는 항목들에서 『석봉천자문』의 석에 비해 『주해천자문』의 석이 표제 한자의 의미를 보다 정밀하고 체계적으로 표현하는 어휘로 바뀌었다.
구체적으로 『석봉천자문』의 ‘鵾 새 곤, 遼 멀 료’가 ‘鯤 큰고기 곤, 僚 동관 료’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수정은 통해에서 속본의 잘못을 고친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자음의 표기에서도 『석봉천자문』과 일치를 많이 보인다.
또한, 『삼운성휘(三韻聲彙』, 『전운옥편(全韻玉篇)』과 일치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예컨대 ‘取’의 한자음이 ‘츄’로 나타나는 것 등은 『삼운성휘』와 일치한다. 그리고 정음과 속음을 다 밝히는 경우에는 『전운옥편』과 일치한다.
한자음에 있어서 구개음화 현상이 반영된 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석봉천자문』과 일치하는 석이 많지만 복수의 석 중에는 『석봉천자문』보다 근대적 성격을 드러내는 석을 많이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그러므로 『천자문』은 단순한 기초 문자 교육에만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4자 1구를 하나하나 학습하고 체계적으로 익힘으로써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언행을 교육하는 데도 목적이 있었다.
특히『주해천자문』은 『삼운성휘』, 『전운옥편』과 한자음이 일치를 보인다는 점, 『석봉천자문』을 포함한 종래의 속본(俗本)을 수정한다는 구절이 있다는 점, 책 크기를 줄여 간행하는 보통의 방각본들과 달리 『석봉천자문』과 같이 책 크기가 큰 점 등이 큰 특색이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보아서 국가에서 간행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규범적이고 공적인 성격을 지녔던 한자교본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 『규장각소장어문학자료 어학편 해설』(서울대학교규장각, 2007)
- 『국어사 문헌자료 연구-근대편Ⅰ-』(홍윤표, 태학사, 1993)
- 「『주해 천자문』의 단수자석과 문맥지석의 반영에 관하여」(박병철,『구결연구』17, 200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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